나에게./내안에 수다.

두번째 내린 커피에 관한 짧은 생각.

북아프리카 2023. 1. 22. 06:18

 

 

지난밤에도 잠들지 못했다.

어제 늦은 오후에 GYM에 가서 50 여분을 땀내며 걷고 뛰었다. 

밤에 쉬이 잠들줄 알았는데 역시 새벽까지 말똥을 굴리며 잠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일찍 일어나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끓여 프렌치프레스로 커피를 내렸다. 진한 향기가 덜 깬 아침을 깨웠다.

처음 커피 가루에서 만들어져 나온 커피는 불면으로 피곤한 눈꺼풀을 뜨이게 할 만큼 강하고 진하다.

그 진함이 너무 거칠 거 같아서 헤이즐넛 크림을 넣었다. 그래도 향과 맛이 진했다. 

아침을 진하게 열었다. 

 

나는,

두 번째 내린  커피를 좋아한다.
로스팅이 잘  향기 나는 커피가루를 넣고 적당한 온도로 끓여진 뜨거운 물을 붓고 커피 머신에서 처음 내리워진 커피는 신선하고 향도 좋고 맛도 진하다. 
불면으로 절름거리는 내의식을 그 향과 맛으로 단번에 바로세운다 . 흐늘흐늘한 비몽사몽 한 무의식의 세계에서 또렷한 의식의 상태로  자신감 있게 나를 인도하는 듯하다. 아침에 처음 내려진 커피를 마시는 건 젊은 날의 열정을 내게 다시 공급하는 듯이 신선하고 힘 있고 자극적이다.


그러나,
나는,

두 번째 내린 커피를 좋아한다. 

 

맛도 향도 신선함도 처음 뜨거운 물에 다 녹여주고 촉촉하게 남은 커피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부어 미쳐 다 녹여내지 못한 , 보여주지 못한 , 꺼내놓지 못한 것들을 최선을 다해 다시 끌어내어 떨어지는  투명한 듯 옅은 갈색의 커피.... 열정은 이미 남아있지 않다. 새로움과 기대감, 신선함도 더 이상은 없다. 하지만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 그 안에서 녹여져 담기는 , 향도 희미하고 맛도 옅은, 신선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 아직 내가 커피일까요?라고 하는 듯  조금은 부끄러운 듯이 하지만 아직 커피라 말할 수 있는 두 번째 내린 커피...


아침을 깨우는 게 진하게 내려진 첫 번째 커피라면 , 정신없이 보내는 하루 중에 잠시 나를 위로하고 평화 속에 머물게 하는 건 흐리게 내려진 두 번째 커피다 . 두번째 내린 커피는 향도 맛도 진하지 않고 자극적이지 않지만 부드러움으로 편안함으로 내 입안을 적시고 부드럽게 내게 스민다. 달콤한 크림을 넣지 않아도 그 흐림만으로 푸근하다. 커피이지만 커피 같지 않은 그럼에도 분명 커피인.....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녀의 남자친구는 하루에도 열 번이나 넘는 전화를 그녀에게 했다.

처음에 그녀는 그의 관심과 열정과 사랑에 감동하고 기뻐했다. 행복해했다. 바라보는 나는 내심 부러웠다.


얼마 전, 그녀는 그와 이별을 했다. 그와 이별을 고하고 그녀가 내게 했던 첫마디는 " 아~~ 오늘 하루가 너무 조용하고 평화스러웠어 " ~~ 마냥 행복해 보이기만 하고 때론 엄청 부러움을 갖고 바라봤던 내게 , 그녀는 그동안 그녀가 얼마나 옥죄이는듯한 느낌 속에서 살았는지 토로했다. 너무 열정적이고 너무 강하게 대시하는 그가 그녀에게 얼마나 무겁고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얼마큼의 두려움까지 느끼게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로부터 전화가 오지 않는 게 얼마나 평화스럽고 안정적이고 편안한 시간들인지....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 사람답지 않게 밝은 얼굴로 그녀가 말했다.


아삭한 오이를 넣어 매운 국수를 비벼먹고 아침에 진한 커피 한잔을 만들고 촉촉하게 남은  커피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부어 두 번째 커피를 내렸다 .초코렛 쿠키와 두번째 내린 커피로 디저트를 먹었다.그 밍밍한 맛과 향이 달콤한 쿠키와 어우려져 매운 입안을 위로했다. 

 

나는,

두번째 내린 커피가 좋다.

이제는 신선함도 진한 향도 흐늘거리는 의식을 바짝 일으켜 세우는 강렬함도  없지만 , 마지막 힘을 다하여 최선을 다하여 나를  위로해 주는 그 편안하고 덤덤함이 좋다. 그리하여 아직 커피라 불릴 수 있는 두 번째 내려진 커피... 나는 그 옅은 맛과 흐린 향과 진정스런 ㅇ 혼기가 좋다. 아무렇지 않게 스미는 그 평화로움이 좋다. 

 

어느 한날, 

날마다 날 선 위태로움으로 지치고 고단한 날,

강하고 자극적이고 진한 향이게 가끔 멀미가 나르듯이 버거운 날...

 

진하지 않은 향과 강하지 않은 맛과 적당히 식어버린 온도로 나는 그대 손에 쥐어지고 싶다.

열정도 다 빠져나가고 향도 맛도 뜨거움도 다 사그라든 채로 아무렇지 않은 그 순한 평화로움으로 그대의 지친 생각과 무거운 마음과 고단한 위장에 스미고 싶다..... 

두 번째 내려진 커피로....

 

 

 

 

 

 

 

 

'나에게. > 내안에 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7 허리케인 "IRMA" 의 기록.  (0) 2023.01.27
눈물로 세상을 버티려고 하지마라.  (3) 2023.01.25
청국장.  (0) 2023.01.19
일관성과 다양성에 관하여 ......  (0) 2023.01.16
이별 연습.  (2) 2023.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