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안에 수다.

청국장.

북아프리카 2023. 1. 19. 07:19

 

 

몇 년 전,

3 주가 조금 넘는 한국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후,

한 이틀 동안 평소 집에서 잘 먹지 않던 음식들을 찾아다니면서 먹었다. 
일 년에 몇 번 먹을까 말까 하던 버거킹 와퍼, 냄새를 별로 안 좋아하던 타코벨 타코와 퀘사디아, 엑스트라 치즈를 얹은 파파존 콤비네이션 피자, 그리고 두툼한 티본스테이크를 사다 구워서 에이원 소스를 뿌려 먹었다.  근 한 달여 동안 오랫동안 먹지 못했던 내 나라의 음식으로 호사를 누렸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엄마가 바리바리 싸주셨던 한국음식 재료들은 냉장고로 밀어 넣어 두고  나는 며칠 동안 니글니글 버터냄새와 치즈냄새가 그리웠던 사람처럼 여기 음식들을 찾아다니며 먹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쉬는 짧은 한숨 


" 휴 ~ 한가지만 그리워하며 살기도 버거운데..... 두 가지씩이나 그리워하며 살아야 하다니.... 내 팔자도 참...."
여기를 떠나면 여기가 그립고 , 거기를 떠나면 거기가 그립고 ,,,,,..

 

한국을 떠나는 아침까지 내가 수저를 놓지 못하고 먹었던 음식은 엄마표 청국장 찌개였다.

다른 집은 어떻게 청국장을 끓이는지 잘 모르겠지만 울 엄마는  새콤하거나 쿰쿰한 묵은지를 넣고 청국장을 끓이신다. 거기에 매운 고추를 썰어 넣고 두부를 잘라 넣고 마지막에 대파를 어슷하게 썰어넣고 끓이는 청국장 찌개... 떠나오기 전날부터 시작해서 떠나는 날 아침까지 냄새난다고 그만 먹으라며 내 등짝을 때리시는 엄마의 만유에도 나는 국물까지 싹싹 긁어가며 청국장 찌개를 먹었다.  

 

어린 시절,

이렇게 추위가 시작할 때 즈음이었나?  엄마는 콩을 사다 물에 불려 끓이시고 절구로 콩콩 찧어서 어디서 구하셨는지 볏짚을 구해 아랫목에 청국장을 띄우셨다.엄마는 대대로 서울깍쟁이 집안이셔서 냄새나는 청국장을 그리 좋아하지 않으셨는데 아빠 - 나는 어릴 적부터 스무 살에 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 늘 아버지를 " 아빠"라 불렀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나이가 먹고도 아버지라는 호칭은 남의 아버지를 부르는 듯하고 " 아빠"라고 불러야 비로소 내 아빠를 연상하게 된다. -  는 경기도 시골 출신 이셔서 그랬는지 된장이나 청국장을 좋아하셨다. 아빠의 식성을 그대로 물려받은 우리들은 신김치 썰어 넣고 두부 넣고 끓인 청국장을 유난히 좋아했다.

 

청국장을 작은 독에 하나 가득 만들어 놓고 , 그리고 김장 때 배춧속을 넉넉하게 만들어서 김장이 끝나고 양념된 배춧속 무채를 독에 담아 익힌다. 

그리고 한겨울 청국장을 끓일 때  시큼하게 익은 김장 배춧속 무채에 청국장을 넣어 끓이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을 정도로 수저가 바쁘곤 했다.

 

된장과 다른 청국장 만의 다른 맛  그리고 다른 냄새.... 내 아이들은 된장 냄새 까지는 받아들이는데 아주아주 오래간만에 내가 살짝 끓이는 청국장 냄새는 아주 질색을 하며 받아들이지 못한다. 실은 끓일 때 냄새는 나도 조금 힘겹기는 하다. 그러나 금방 지은 밥에 그 쿰쿰한 맛과 향이 얼러진 청국장 찌개는 모든 걸 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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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날이 쌀쌀해졌다.

바람이 불고 비도 제법 뿌리고  내일은 화씨 43도 까지 낮아진다고 한다. 그래봤자 한국의 초가을 날씨 정도 밖에는 안되지만 늘 더운날씨 속에 살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쌀쌀한 날씨는 체감온도 영하를 느끼게 한다 .  이렇게 날이 쌀쌀하고 바람도 불고 비도 추적이니 떠나올 때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까지 받아가며 먹던 청국장이 생각난다. 금방 갖지은 밥에 시큼한 묵은지를 넣고 매운 고추 썰어 넣고 두부 큼지막하게 잘라 넣고 끓인 고린내 나는 청국장 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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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거리며 내리는 아침,

어제저녁을 굶었더니 배가 많이 고팠다. 달콤하고 크리미 한 커피가 먹고 싶어 던킨에 들렀다. 

크림 앤 슈가 라이지 커피와 하프더즌의 도넛을 샀다. 달달한 커피에 또 달달한 도넛을 베어 물며 폰에 저장된 청국장 찌개 사진을 보며 아침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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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언제나 멀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