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게온 글. 6

책 속에서 ......

" 허무란 좌절과 방황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일상에 대한 수락을 전제로 한다. 전쟁이 치열한 전장의 한가운데에서도 삶은 지속되고 시장이 선다 인간이란 어떤 끔찍한 상황에서도 밥을 먹어야 하고 잠을 자야 하는 존재다. 허무란 이 존재에 대한 승인이다. 그것이 막막하지 않은것은 아니지만 중년에 이른 나이는 받아들이지 못할 인생이란 없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초월도 아니고 인내도 아니다. 다만 " 수락 " 일 뿐이다. 그러나 이 수락을 통해 삶은 살 만한 것이 된다........... " . . . . 책을 읽다가 ... 책 맨뒤에 어느 평론가가 써놓은 글 중에서...... 한동안, 밀어 두었던 것들을 바투 당겨 안으며 나는 다시 허무하고자 한다. 허무하고자 함은 깨끗이 비워내고자 함, 남..

나에게 주는 시 ...... 류 근.

나에게 주는 시 ​ 우산을 접어버린 듯 잊기로 한다 밤새 내린 비가 마을의 모든 나무들을 깨우고 간 뒤 과수밭 찔레울 언덕을 넘어오는 우편배달부 자전거 바퀴에 부서져 내리던 햇살처럼 비로소 환하게 잊기로 한다. ​ 사랑이라 불러 아름다웠던 날들도 있었다. 봄날을 어루만지며 피는 작은 꽃나무처럼 그런 날들은 내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한 깊이만큼 사랑의 날들이 오래 머물러주지는 않는 거다. ​ 다만 사랑 아닌 것으로 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이 아프고 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 그러므로 이제 잊기로 한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일어서는 사람처럼 눈을 뜨고 먼 길을 바라보는 가을 새처럼 ​ 한꺼번에 한꺼번에 잊기로 한다. ​ 류근. . . . 너에게 주는 시. ​ 마음에 도장을 새기듯 기억하기..

방하착 ...... 이용헌.

방하착放下着* ​ 백병원 영안실 앞마당, 잿 비둘기 한 마리가 언 땅을 찍고 있다 채송화 줄기처럼 연붉은 발가락을 바짓단 밖으로 내놓고 ​ 불광동 옥탑방에 세 들어 살던 비둘기가 탑골공원에 나가는 일은 일과 아닌 일과였다 3호선을 따라 무악재를 넘어 종로 3가에 이르는 길은 그가 기억해야 하는 유일한 항로였다 기껏해야 빵 부스러기로 끼니를 때우는 노후지만 척신隻身의 그에게도 날개는 있었다 장기판을 거들거나 사물 폐를 따르다가도 그는 훌쩍 하늘로 오를 수 있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높이 날 수 없다는 것, 그에게는 적빈赤貧이 곧 자유였다 ​ 방하착放下着을 아시나요? 날개가 점점 무거워져요 더 이상 내려놓을 것도 없는 나이에 그는 그녀를 만났다 창공의 편대에서 떨어져 나온 은빛 비행기처럼 희디흰 그녀의 처소..

허수경....산문집 중에서 " 가소로운 욕심 "

"기숙사에 살 때 내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풀밭으로 토끼들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시간이 없어서 저녁밥은 못 하고 당근 오이나 잘라서 먹자, 하고 당근 껍질을 벗기다가 녀석들을 보았다 나는 당근을 던져주었다. 오물오물 단방에 먹어치웠다. 그 후로 자주 나타나서 내가 당근을 던져주면 오물오물 먹었다.이제는 당근이 집에 없는 날에도 나타나서는 내 방 앞 잔디밭을 어슬렁거렸다. 따로 당근을 사들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기숙사로, 비록 당근 때문이지만 찾아오는 녀석들이 참 예뻐서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말았으니....... 녀석들 중 두 마리의 목에다 리본을 달아준 거다. 한 녀석에게는 푸른색을, 한 녀석에게는 붉은색을, 여름 내내 우리는 참 친해졌다. 용하게도 녀석..

"매디슨 카운티 다리" 중에서 ...... 로버트 제임스 윌러.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매디슨 카운티의 추억(노트포함)(전2권) - 저자 로버트 제임스 윌러 출판 시공사 출판일 2002.10.10 " 유클리드의 이론이 언제나 옳은 것이 아니다.. 두 개의 "평행선" 은 이 세상 끝까지 가도 영원토록 만나지 않는다고? 정말로 그러할까? 평행선이라 하더라도 저 아득한 어느 한순간 만나지 않을까? 마치 소실점에서 선들이 만나듯이.... 나에게는 이것이 한낱 가정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하나의 사물이 그 자신의 존재를 상대방의 존재에 투척하여 "하나"가 되는 시점이 올 것만 같다. 두 올의 실이 하나로 얽혀지듯이.... . . . . 나는 이러한 " 만남"으로 그 품으로 그 "만남"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내 모든 힘을 다해 나의 그 모든 ..

"사랑을 믿다" 중에서 ...... 권여선.

권여선....." 사랑을 믿다 " 중에서..... ​ ​ ​ "일 년 전 그녀는 어떻게 숨 쉬었던가. 그녀에게도 살고 싶다는 희망이 있었던가. 물론 있었을 것이다. 결코 희망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아 그녀가 그것을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 ​ “모든 걸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말이야.” 그녀의 말에 친구가 처연히 고개를 들었다.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면 여전히 뭔가 남아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거야.” “대관절 뭐가 남아 있다는 거야?” “글쎄, 그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별로 보잘것없는 것들이긴 하지.” “그러니 무슨 상관이야?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 남아 있다고 해도 난 상관없어.” 친구가 한 손으로 과장되게 허공을 그렸다. “아니! 보잘것없어! 정말 보잘것없는 것들만 남아 있지!” 친구는 멍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