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Today chat.

눈 다래끼에 관한 발칙한 생각하나.

북아프리카 2023. 5. 12. 02:33

 

 

어릴 적,

눈에 다래끼가 나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항생제를 먹이시고 노랗게 농이 잡히기 시작하려는 눈언저리 그곳에서 눈썹을 하나 뽑으셨다. 그리곤 말씀하셨지. 작은 돌멩이 위에 이 눈썹을 올리고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작은 돌멩이를 올려놓으라고. 골목에 나아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돌멩이를 만들어 놓고 그리곤 숨어서 누군가 그 돌멩이를 발로 차기를 기다리는 거다. 그러면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돌멩이 두 개 얹어져 있는 그 형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발로 차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내 눈에 나려는 그 다래끼가 그 사람에게 가버리는 거라고... 이제와 생각하면 내게 오려하는 나쁜 것들을 남에게 보내버리는 참 치사하고 못된 짓이었다. 혹은 내 자식에게 오려는 나쁜 것을 버려주고 싶은 부모의 심정이라고 억지로 변명할 수 있으려나?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지고 있기 정말 싫은 것들, 내가 감당하기 정말 버거운 것들, 그런 것들도 하나하나 이름을 붙여서 돌멩이 위에 살짝 얹어 놓아 사람들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 가져다 놓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면 뭔가 발로 차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툭~톡~ 발로 차는 그 사람에게 내가 가지고 싶지 않은 것들이 옮아갔으면 좋겠다는 아주 발칙한 생각이 든다.

내 안에 나를 향한, 혹은 다른 이를 향한 지겨운 잔소리, 헛되고 헛된 욕망, 바라지 않은데 나를 떠나지 않은 나의 뱃살, 쓸데없는 자존심, 늘어나는 주름살, 그치지 않는 기다림, 이유 없는 미움, 증오, 질투, 거부감, 손톱 세우기, 눈꼬리 치켜뜨기, 똥밖에 없는 배짱, 기타 등등, 기타 등등..

모,

나쁜 것만 가져다 놓겠다는 건 아니다.

간혹,

내 안에 너무 차고 넘쳐서 버거운 그리움도 조금 다른 이에게 주고,

내 안에 너무 무겁게 치밀어 오르는 간절함도 조금 덜어내어 누군가 에게 주고,

내 안에 너무 뜨거워서 데일 것 같은 정열도 조금 빼어내어 나눠주고....

어릴 적 솟아오르려 하던 눈 다래끼를 그렇게라도 피하게 해주고 싶어 했던 내 아버지의 사랑이, 지금 이만큼 크고 늙어가는 나이 든 이 딸내미에게 간절하게 그립다.

내가,

꿈속에 하나하나 올려놓은 내 안에 버리고 싶은 것들의 돌멩이들을,

그런,

내 꿈속에 들어와 하나하나 발로 톡~톡~ 차주시구려...

그대를 돌멩이 위에 올려놓지는 않을 테니.....

0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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