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날마다 산성을 오른다. "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치욕과 자존이 다르지 않다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다.
치욕은 치욕이고 자존은 자존이다.
지금의 무릎 꿇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일이 될 거라고...
지금의 치욕이 결국은 다시 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될 거라고....
그래서 지금의 치욕은 결국 자존의 길이 되는 거라고 그는 말했지..... 최명길.
그럴 수 없다.
치욕은 죽음이다
죽음으로 자존을 지킬 수 있다면 차리리 죽음으로 자존하는 게 낫다.
무릎 꿇음 으로써의 자존은 자존이 아니다. 치욕은 치욕이다.
치욕은 죽음이다. 그가 말했다........ 김상헌.
" 난,
날마다 산성에 올랐다."
내 안에 혹은 내 밖에 무수한 적들에게..
내 무릎을 꺾고 조금의 안일한 삶 조금의 조용한 삶 그리고 조금의 보다 나은 삶을 구걸했다.
무릎으로 길 지언정 지금 평화로울 수 있다면 지금의 치욕으로 내 삶을 연장하고 편안한 미래를 꿈꿀 수 있다면 이런 치욕쯤은 아무것도 아니다고 나를 스스로 위로하며..
난,
날마다 삼전도 그 벌판으로 나가 내 무릎을 꺾었다.
그리고,
해가 지면,
난,
날마다 다시 산성에 올랐다.
너덜 해진 내 무릅을 감싸 안고 너덜해진 내 심장을 추슬러 부둥켜안고난 밤마다 다시 산성에 올랐다.
밤새 꺾인 내 무릎을 다시 세우고 숙였던 내 고개를 들어 밤하늘도 한번 쳐다 보고 그리고 치욕으로 깊이 베인 내 상처를 치유했다.
다시 치욕스러워지기 위해서 ,
다시 무릎 꿇고 자존하기 위해서...........
난,
날마다 산성에 올랐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을 난 삼전도 그 벌판에서 치욕스레 무릎으로 기었고 다시 산성을 올랐다.
자존하기 위해 치욕스러워야 했고,
치욕스러워하기 위해 자존해야 했다.
" 치욕과 자존은 정말 다르지 않았다"
허나,
난,
이제,
마지막으로 산성을 오르려 한다.
이제 다시는 삼전도 그 치욕의 벌판에서 내 무릎을 꺾지는 않을 것이다.
난 이제 그 치욕을 버리려 한다.
자존 오로지 자존만을 하기 위해 이제 더 이상의 치욕은 버리려 한다.
내가 오른 내 산성에서 치욕을 버리고 자존하는 일이 춥고, 헐벗고, 굶주리고 , 외롭고, 슬프고 , 고통스럽고, 아프고, 죽을 만큼 힘들어도 더 이상 무릅을 꺽는 일은 더이상 나를 치욕 속에 놓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 자존을 위해 치욕속에 나를 놓지는 않을 것이다.
치욕을 주고산 자존은 자존이 아니다.
패배고 수치고 부끄러움이고 죽음이다.
자존은 스스로 존재함이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거다.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면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거다.
자존( 自存 )................ 스스로 존재함.
난,
이제,
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 존재함이다.
나, 스스로 존재할 것이다.
나,
다시는 무릎 꿇지 않으리.
2007 년 9 월 3 일.
2007 년 11 월 21 일 나는 혼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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