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Book of Movie.

김 훈 ...... 칼의 노래.

북아프리카 2023. 5. 10. 03:31
 
칼의 노래
2001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한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당대의 영웅이자, 정치 모략에 희생되어 장렬히 전사한 명장 이순신의 생애를 그려냈다. 작가는 시대의 명장 이순신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함께 표현해내며 사회 안에서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삶과 죽음이 엇갈리는 전장에서 영웅이면서 한 인간이었던 이순신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공동체와 역사에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선 이들이 지녀야 할 윤리, 문(文)의 복잡함에 대별되는 무(武)의 단순미, 4백 년이라는 시간 속에서도 달라진 바 없는 한국 문화의 혼미한 정체성을 미학적으로 다루고 있다. ▶ 이 책은 2001년에 출간된 〈칼의 노래〉의 개정판입니다.
저자
김훈
출판
문학동네
출판일
2012.01.05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 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결박된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싶었다.

뭍으로 건너온 새들이 저무는 섬으로 돌아갈 때, 물 위에 깔린 노을은 수평선 쪽으로 몰려가서 소멸했다. 저녁이면 먼 섬들이 박모 (薄募) 속으로 불려 가고, 아침에 떠오르는 해가 먼 섬부터 다시 세상에

돌려보내는 것이어서, 바다에서는 늘 먼 섬이 먼저 소멸하고 먼 섬이 먼저 떠올랐다....."

 

 

칼의 노래를 시작하는 첫 부분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쟁 중의 얘기를 그리고 칼의 얘기를 시작하면서 너무 평화롭게 아름답게 시작하는 첫 부분이 나는 좋다. 몇 년 전 내 차에서 나와 동행하며 몇 개월을 주야장천 내 곁에 있었던 김훈 님의 " 칼의 노래 "를 다시 읽었다.

 

처음 읽을 때는 줄거리를 위주로 읽었지만 몇 개월 손이 닿는 곳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아무 페이지를 열어도 긴 장문의 산문시를 읽듯이 문장 하나하나 마음에 와닿을 듯이 김훈이라는 사진 속에 적당히 나이 먹고 적당히 흰머리가 나고 하나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그 저자에게 마음을 뺏겨 감히 짝사랑도 했었다.

 

요즘,

나 또한 내 안에 무수히 일어나는 베어 지지 않는 적들을 향해,

칼 한번 제대로 휘두르고 싶어서 그래서 다시 시작한 칼의 노래.

그래서 다시 시작한 칼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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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이 지나고 다시 재 침략한 왜. 가토의 머리를 바라는 조선 조정에 대해 순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금부로 압송당하여 옥고를 치른 이순신. 그 사이 수군통제사를 맡았던 원균은 이순신이 3 년을 모아놓은 병사며 전선들 식량들 그 모든 수군의 총력을 칠전량 전투에서 다 말아먹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장렬한 죽음을 맞았다. 그 암담한 상황에 임금은 다시 백 의의 몸인 그를 삼도 수군통제사로 임명했다. 그에게 조정에 명에 불응한 죄에 대한 답으로 겨우 죽음을 면케 해 주겠다는 임금의 면사첩(免死帖) 하나 가지고 적의만 있고 함대는 없는 이순신의 백의종군으로 책이 시작된다.

 

완전히 거덜 난 수군을 다시 일으켜 세워 전선 12 척과 협선 그리고 백성들의 어선까지 동원하여 피할 수 없는 선택 일 자진으로 적의 수군 200여 척을 맞았던 울돌목 명량 해전. 명량에서의 승리로 그가 버려야 했던 아들 면의 죽음.

전쟁에서 그가 품었던 더러운 냄새 나는 여자 여진. 그러나 그가 품을 수밖에 없었던 여자.

더럽고 냄새나고 상처 나있더라도 그가 품을 수밖에 없었던 그의 조선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가 죽을 곳으로 선택한 노량 앞바다.

 

대군을 이끌고 와 전투보다는 외교로 도요토미 가 죽은 후 전의를 상실한 왜군의 퇴로를 열어주는 걸로 전쟁을 끝내려는 명에 대항해 절대로 그대로 보내줄 수 없는 그와 수군들의 의지가 왜로 돌아가려는 그들을 노량에서 고립시켜 정말 수장시키다. 적선 200여 척이 부서지고 온전히 돌아간 전선은 50여 척뿐이었다고 하니 그런 승리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그는 그의 죽음을 주고 승리를 얻었다.

 

마지막 그가 휘두른 그의 칼은 온전히 보이는 그의 적들을 다 베어버렸지만 그도 또한 장렬히 베어지다.

칼로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남겨 놓고....

 

"세상의 끝이.......... 이처럼.......... 가볍고......... 또...... 고요할 수 있다는 것이.... 칼로 베어 지지 않는 적들을... 이 세상에 남겨놓고..... 내가 먼저..... 관음포의 노을이..... 적들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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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라는 제목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책에는 온통 징징징 하고 울어대는 칼의 울음에 관한 얘기뿐이다.

칼이 우는 건 베어내고 싶어 하는 본능 때문이 아닐까? 사람에 의해 제련되고 무수히 두드려지고 담금질되어 쇠에서 칼로 변하여 날 때부터 한가득 적의를 품고 있는 칼. 본성에 베어내고 싶은 욕망을 갖고 있는 칼. 그 칼이 베어내고 싶은 거.....

늘 울음으로써 적의를 품고 그 적의로 그의 칼이 베어내고자 했던 수많은 적들과 또 죽고자 무수히 일어나던 눈에 보이지 않는 적들 그리고 적의들...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조금씩 울어대는 내 안의 칼은 무엇을 베어내고자 우는 것일까?

내 안에 내가 베어버려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다시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 나도 베어내고 싶은 내 안의 무수한 적들을 생각했다.

헛되고 헛된 욕망, 품지 말아야 할 희망, 가지지 못한 자의 분노, 넘치고 넘치는 분수,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치부에 대한 허세 채워지지 않는 머릿속 가슴속 그리고 때때로 부끄러운 줄 모르는 꼴값.

 

하지만,

나안의 적들 보다 먼저 베어내야 할 것은 그 적들을 키우고 있는 나 자신임을.......

그가 남겨놓은 칼이 베어 지지 않는 적들을 향해 울듯 내 안의 칼도 하루하루 베어 지지 않는 내 안의 적들을 향해 운다.

언제쯤 나는 내 안에 베어지지 않는 적들을 향해 내 안의 칼을 휘두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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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소단원마다의 제목들도 가히 시의 제목처럼 아름답다.

 

"안갯속의 살구 꽃" "칼과 달과 몸 " "노을 속의 함대 " " 바람 속의 무 싹 " " 내 안의 죽음" " 그대의 칼" " 베어 지지 않는 것들" "아무 일도 없는 바다" " 비린 안개의 추억 " "몸이여 이슬이여 "

그리고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 들리지 않는 사랑 노래 "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 서평 중..

 

언제쯤,

나는 누구 하나 매혹시킬 수 있는 글쓰기를 할 수 있을까?

 

 

 

 

08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