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안에 수다.

비와 허기짐에 관하여 ......

북아프리카 2023. 1. 3. 11:37

 

 

 

"사라 맥라클란"의 "에인절"을 듣는다.

 

6 월부터 허리케인 시즌이긴 하지만 8 월에 들어서면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리는 비는, 미처 방어하기도 전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처럼 참 대책이 없다. 어젯밤에도 창을 두드리던 비는 오늘 아침 이른 외출을 하려는 데도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아니라, 흡사 나를 비의 감옥에 가두어 두기라도 할 듯 철창만큼이나 굵은 빗줄기들...

 

빈속에 헤이즐넛 커피에 크림만 넣은 커피를 연거푸 두 잔을 먹고 들어오는 길....

 

아........ 허기지다.

아........ 허기지다 ...

비는 생명을 잉태하기도 하고 생명을 키우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는 사람 속을 허허롭게도 만든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정말로 허기가 진다. 빗줄기가 위장을 다 쓸어내 버리는 것처럼 먹어도 먹어도 계속 궁금해지는 입.. 채워도 채워도 또 빈듯한 기분..

 

생각해 보니 오래된 가요에 나오는 어느 신사도 요릿집 문 앞에서 매 맞고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으라는 쏘임을 당한 날도 비 오는 날일 거 같고,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운수 좋은 날 마누라 먹이려고 곰탕 국물을 사던 그날도 비 오는 날일 거 같고, 영화나 소설에 비 오는 날 처마 끝에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탁주나 소주를 기울이는 수많은 비 오는 날들 ....

 

그러니 비 오는 날,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도 알게 모르게 각자의 허기짐을 달래기 위해 약속을 하고, 밥을 같이 먹고, 별식을 만들어 먹고, 후미진 골목에서 비가 내리는 소리는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오늘 같은 날은 김치를 송송 썰어 넣든 야채에 해물을 섞어 넣든 몽실몽실 반죽을 만들어 자글 자글 기름에 얹어 부침개를 만들어 먹었으면... 딱!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비가 오면,

허기가 진다..

그 황황한 내 안의 허기를 채우고, 달래고 싶어진다.

가끔,

내 살아가는 시간에도 비가 내린다.

인생이 지루한 회색빛으로 덮여 버리고 그 회색 하늘 아래로 후드득후드득 빗줄기가 쏟아질 때 회색빛 삶에 허기를 몰고 오는 비... 그 허기에도 뭔가 채워서 살살 달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든다.

 

비는 쏟아지고, 햇살은 기약 없이 언제 비춰줄지 모르고 마음은 황황해져 바람이 지나가고 그러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뭔가 내 마음에 허기를 채워줄 것을 찾고 싶어진다.

 

마음이 허기가 질 때는,

마음으로 밖에 채울 수 없을 듯....

 

내 인생에도 가끔 부슬부슬 비가 온다.

그리고 내 마음에도 가끔 허기가 진다.

하나, 아무 마음으로 내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걸 안다.

 

간혹 내 인생에도 비가 오고 마음에도 허기가 지고 외롭고, 슬프고, 힘들고 쓸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아무 마음을 채워 넣을 수 없다. 그렇게 채워진 마음은 비가 개면 쉽사리 잊어버릴 수 있다. 그렇게 쉽게 내 안에 들여놓은 마음은 맑은 날 쉽게 놓아 버릴 수도 있다. 비 오는 날 내가 만들어 먹는 부침개, 소주 한 잔, 곰탕 한 그릇의 푸근함을 내가 쉽게 잊어버리듯이.....

 

그러니,

마음으로 마음을 채우는 일은 내 인생에 내리는 잠깐의 비 때문에 혹은 햇살 때문에 혹은 바람 때문에 혹은 힘듦, 슬픔, 두려움.. 외로움 이러저러한 여러 가지 모든 이유를 다 넘어서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있는 그대로의 "그대 "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아무 이유도 아무 조건도 아무 이물질도 섞이지 않은 순수의 "나" 그리고 순수의 "그대"로 말이다.

 

내 인생에 비가 오고 허기가 진다고 그 허기를 면해 보고자 아무 마음을 채우는 일은, 빈대떡 한 조각을 먹고 소주 한 잔을 마시고 곰탕 한 그릇을 비우는 것처럼 하찮은 일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 마음이 내게 빈대떡이 아니듯 내 마음도 당신에게 빈대떡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햇살이 잠깐 눈부시게 퍼지더니, 다시 하늘은 비를 뿌릴 태세다.

팬트리를 뒤지고 냉장고를 뒤져 밀가루를 꺼내고 김치 비슷한 거를 꺼내고 커다란 보울에 그것들을 버무려 기름을 자 글자 글 굴려 나도 오늘 김치 빈대떡을 부쳐 먹어야 할 것 같다.

내 위장에 허기짐은 달랠 수 있겠지만, 내 마음에 허기짐은 그저 허기짐으로 비워두고 싶다. 어느 날 내게 와 나를 채워줄 오직 하나의 소중한 마음을 위해...

어느,

맑고,

화창한 날,

모든 허기짐에서 해방되어,

부른 배 두드리며............

 

"나"는 "나",

"그대"는 "그대"로 만나자.

 

" 사라 맥라클란"의 "에인절" 이 끝났다.

이 음악을 들을 땐 왠지 캐리어를 채워 공항으로 나가야 할거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어느 날,

작은 캐리어 하나로,

"그대"의 허기를 채우러 가겠습니다.

기다려...

 

 

08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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