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안에 수다.

바바리맨의 기억.

북아프리카 2023. 1. 4. 11:40

 

 

내가 다니던 여고에도 바바리맨이 있었다.

학교 정문은 주택가와 떨어져 있고 다른 학교들과 담장을 같이 하고 있어서 학생이 아니고서는 굳이 와야 할 필요가 없는지라 그쪽은 출몰하지 않았는데, 학교 후문은 주택가에 바로 접해 있었고 꼬불꼬불 여러 개의 골목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골목들 끝에는 작은 재래시장이 있었다. 그는 그 골목길을 근거지로 출몰하는 바바리맨이었다.

나는 두발은 자유화됐었고, 교복을 입고 졸업한 마지막 세대다. 고2 때 나는 짧은 커트머리에 흰 블라우스와 검은 주름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고 2 때부터 아마도 대학 준비를 위한 야간자율학습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빙 ~ 둘러서 버스 정류장을 가야 하는 정문보다 시장통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쉽게 가기 위해 삼삼오오 팔짱들을 끼고 후문으로 골목으로 흰 블라우스 여고생들이 밤 아홉시가 넘은 시간 우르르 몰려나오곤 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그런 우리들 사이에 정말 바바리 같은 기다란 외투를 하나만 걸치고 나타났다.

골목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었으니 그는 밤에 하교하는 우리들 사이에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사람처럼 다가와서 활~짝~ 벌리고 우리가 놀래서 소리소리를 지르고 도망하면 자신도 반대 방향으로 쏜살같이 도망가곤 했다. 이건 들은 이야기 ... 난 안타깝게 못 만났다 ...

암튼 그가 출몰하면서 학교에서는 야간 자율학습 마치고 하교 시 절대 혼자 가지 말고 꼭 무리를 지어 다니라고 주의사항이 내려왔고 한참 사춘기에 호기심 궁금증 많은 우리들은 시간이 나면 모여서 " 누가 봤니? " " 어땠어? " 하면서 시시콜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수다를 떨곤 했다.

학교에는 태권도팀과 테니스 팀이 있었다. 걔들은 여고생이지만 운동을 하는지라 평소에도 교복보다 체육복을 자주 입었고 신발도 운동화를 주로 신고 다녔다. 여고생이지만 그때의 분위기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보이시한 여고생 들.

어느 날, 종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일이 우리 학교에도 일어났다. 어느 날 초저녁쯤 운동을 마친 그 친구들이 그날은 웬일로 교복을 입고 하교를 하고 있었는데 그들 앞에 겁도 없이 활~짝~ 벌리고 나 잡아봐라~ 하며 도망을 갔단다. 뜀박질이라면 할 만큼 한 그 친구들 교복을 입거나 말거나 서너 명이 전력질주해서 결국 그 바바리맨을 넘어뜨려 신나게 패 줬더라나...

그 후로 그 이야기를 들은 후 사실인지 아닌지 바바리맨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건 다수의 여고생을 상대로 한 일종의 성희롱? 내지는 성폭력의 일종이었다.

남고에는 바바리맨, 혹은 바바리우먼이 나타났다는 말은 못 들었으니 말이다.

전에 일했던 옆 사무실에 무지 이쁘고 젊은 여자애가 신입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미모와 젊음은 내가 봐도 엄청 부럽부럽할 정도였다. 스패니시 계열의 그녀는 여자인 내가 봐도 쭉쭉 빵빵한 몸매와 그 젊음에 어울리는 짧은 치마와 몸에 달라붙는 상의로 눈길을 끌기 충분했다. 같이 일하는 남자 직원은 물론 주위 다른 삼실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그들은 그저 예의 바른 인사 정도만 하지 그녀가 여자로서 특별히 받아야 하는 아무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중에 하나 어떤 남자가 그녀를 눈길로 심하게 쫓는 일이 있었다 . 말도 없이 노골적으로 그녀를 보기만 하면 아래위로 훑어보며 쫓는 거 .....

어느 날 그녀 경찰을 불렀다. " 저 사람이 나를 성희롱 해요 " 가 이유였다.

그를 불러 몇 가지를 묻고 그녀를 불러 몇 가지를 묻고 .... 결론은 그가 그녀에게 관심 있어 심하게 쳐다본 건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싫어하니 그는 그녀로부터 멀리 떨어지기를 바란다. 또 그녀로부터 이런 항의가 들어오면 그때는 수위가 달라질 거다 하는 게 경찰의 설명이었다.

내가 사는 지금의 세상은 오프라인 보다 어쩌면 온라인으로 더 많은 다수의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가끔 나는 여자로서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불쾌하고 화가 나는 글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나는 그런 때 .... 아..... 내가 성희롱 당하고 있나? 혹은, 이건 다수의 여자들에 대한 집단 성희롱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런 느낌이 들 때 아 ...수십 년 전 나타났던 바바리맨들이 아직도 바바리를 펄럭이는 세상에 나는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린 시절 지나왔던 시간들은 " 성희롱 "이나 " 성폭력" 이니라는 말을 못 듣고 자랐다. 그만큼 그게 범죄인 지도 모른 채 그저 숨죽이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세상이 변했다. 아니 변하고 있다. 변하고 있는 세상이라 아직 다 근절되지 못하고 아직도 숨죽여 울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로 인해 벌어지는 범죄의 희생양은 거의가 여자다. 나는 같은 여자로서 그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 여자가 그러니 그렇지 .." " 여자가 그렇게 행동을 했으니 그렇지..." " 여자가 빌미를 줬으니 그렇지..." 등등의 말로 얼버무린다면 너무 비겁하고 비겁하다.

여"성"이라서...

혹은,

남"성"이라서 ...

그 "성"으로 인해 불편하고 불쾌하고 부끄럽고 화가 나는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EDPS (음담패설) 도 " 성희롱 "이다. 상대의 성을 두고 혹은, 남녀 둘만이 은밀하게 소곤대며 해야 하는 말들을 농담이나 우스개 소리라는 말로 치부하며 보이지 않는 다수의 다른 성들의 불쾌감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잠재적인 혹은 작은 의미의 불특정 다수를 향한 성희롱이라 한다면 내 생각이 너무한 걸까?

그래도,

나는,

내가 여"성"이라서 남"성" 들이 아무렇지 않게 하는 농담이나 우스갯소리에 부끄러워하고 불쾌하고 싶지 않다.

내가 앞으로 조금은 더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그리고 내 딸아이가 앞으로 나보다 더 오래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는,

더 이상 바바리 맨이 활개치며 바바리를 펄럭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 딸아이가 여자라서 부끄럽고 수치스럽고 불쾌한 말이나 행동들로 불쾌하고 상처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082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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