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안에 수다.

노카페인 커피에 관한 짧은생각.

북아프리카 2023. 1. 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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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yriams-Fotos, 출처 Pixabay

 

 

매해 건강검진을 위해 의사를 만났다.

이것저것 문진을 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몇 가지 검사를 오더 했다.

검사를 받기 위해 예약을 하고 일찍 일어나 돌아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 즈음 다시 의사 면담이 있었다.

다른 검사 수치는 정상 범위에 있는데 약을 먹고 있는 혈압은 그리 좋은 수치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의사 : 혹시 너 커피 마시니?

 

나 : 당근이지... 그래도 하루에 두 잔 정도 밖에는 안 마시는데?

 

의사 : 어머 얘~~ 너 커피 끊어.. 커피에 카페인이 혈관을 수축시켜서 혈압에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아

 

나 : 아니... 수십 년을 마셔온 커피를 어떻게 끊으란 말씀?

 

의사 : 그래그래.. 나도 알아... 나도 커피를 못 끊고 있거든.... 하하... 그래도 너는 노력해 봐..

 

나 : 그럼 decafe 커피는 괜찮을까? 카페인을 빼고 마시면?

 

의사 : 그래 노카페인 커피로 바꾸도록 해봐..

 

그리하여 그날부터 내 커피는 노카페인 커피가 되었다.

노카페인 커피를 마시면서 근 일주일 동안 두통에 시달렸다.

카페인 금단현상 같았다.

물론 커피 맛도 딱! 카페인 빠진 커피 맛이랄까? 뭔가 맹숭맹숭한 맛이었다.

그래도 커피를 끊는 거보다는 나았다.

일주일 두통에 시달리고 나는 요즘은 그럭저럭 카페인 빠진 커피에 적응이 되었다.

한 해 두 해 나이가 먹어가면서 내 의도와 상관없이 줄이고 빼어버려야 하는 것들이 늘어남을 느낀다.

소확행이니 미니멀 라이프니 하지만,,,,,, 오랫동안 나와 동고동락했던 것들과의 이별이 쉽지 않다.

그리하여 서글프다.

.

.

멀리 있는 친구가 몇 곡의 음악을 추천했다.

친구는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해 있다.

나는 듣다 보면 그냥 잠 밖에 안 오는 그 음악에 전혀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출근하면서 알렉사에게 부탁해 그 느릿느릿하고 휘늘어지는 음악을 가끔 듣는다.

 

며칠 전 출근하면서 나는 이름도 모르는 뉴에이지 음악을 들었다.

듣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뉴에이지 음악은 결핍의 음악이로구나.

결핍이 만들어 내는 미학.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그런 구절이 있었다.

결핍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거라고.

부족함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애를 써서 창조를 꿈꾸게 되고,

그 애씀이 결국은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거라고.....

 

보통의 가요나 팝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빼어내고 그저 악기로만 연주되는 뉴에이지...

그 결핍이 만들어내는 또 다른 아름다움.

친구는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지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뺀 뉴에이지 음악에 빠져들었나?

.

.

앞으로 남은 내 인생에도 아마도 더해지기보다는 빼어내는 것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카페인을 빼어내는 데도 두통과 마음의 쓸쓸함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몇 번 하다 보면 익숙해지리라 생각한다.

 

난 얼마 전 오랫동안 연을 이었던 친구라는 이름의 여인네와 절연했다.

시작은 그야말로 미미한 시비였지만 오랫동안 그녀와의 연으로 내가 느꼈던 불편함과 신경 쓰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녀를 보낸 내 관계의 공간에 제법 큰 공간이 생겼다.

그런데 괜찮았다. 결핍이 주는 허허로움과 여유로움이 내게 주어졌다.

 

누군가는,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많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인간관계를 넓히려 굳이 애쓰지 말아라.

인생에는 내 사람 한두 명만 있으면 되는 거다.

나머지 시간과 공간들은 혼자 침묵할 것.

.

.

나이가 들어가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은 많은 것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 많은 사람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요것조것 좀 부족하고 덜 채워져 조금 절름거리고 조금 흔들려도 부족함으로 그냥 부비부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만나야 하는 사람의 조건이 집 있고, 차 있고, 땅 있고, 돈 있고.......... 모 그런 걸 염두에 둔다면,

 

내가 너무 싸구려 같은 기분이 들 거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드 카페 ( decafe) 커피를 혼자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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