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안에 수다.

오늘, 살아있어 아름다운 그대에게.

북아프리카 2023. 1. 13. 12:02

 

 

우리 강아지 블루는 9 월 23 일 이면 16살이 된다.

이혼 전 태어난지 한달이 되서 내딸 진이의 생일선물로 우리가족이 되었다.

아이들 어릴적 부터 우리집 막내로 온갖 사고를 다 치면서도 마냥 이쁘기만 했던 블루...

작년 치과 치료를 받다 입가에 상처가 난 후 상처 봉합하는 수술을 세번이나 했다.

그러면서 항생제와 진통제를 오랫동안 먹어야 했다.

얼마전에 결국 음식을 거부하고 드러누웠다.

병원에 데려가니 췌장이 안좋다고 나이도 있으니 안락사를 시키던 입원을 시키란다.

병원에 3 일 입원하고 데려온 후 블루는 우리집 상전이 되었다.

한달 동안 약과 영양제를 주사기로 먹이고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입맛 없는 녀석에게 별별 음식을 해다 바치면서 혹여 이놈이 후딱 우리곁을 떠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

알고있다.

강아지 수명 16년 이면 결코 적지 않은 삶을 산것이라고......

이제 그만 떠나도 잘 살고 가는것이라고 ......

알고는 있지만 하루하루 녀석이 기운을 잃어가고 늘어져 눈만 껌벅이는 모습을 보는건 쉽지 않다.

살아있는 생명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건 화병에 꽃이 시들어가는걸 보는거 보다 훨씬 더 고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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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는 올해 5월 3 일 77 세가 되었다.

그녀는 말기 치매환자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건 2018 년 가을 이었다.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그녀의 아들이 엄마가 영어는 거의 말하지 못하고 알아 들을수 없는 한국말을 하는데 엄마 곁에서 이야기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의가 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두시간 쯤 출근전에 잠시 들러 그녀와 놀아주는 파트타임을 시작했다.

그해 겨울 그녀는 넘어져 오른쪽 고관절이 부러졌다. 수술후 요양병원에 옮겼는데 거기서 다시 침대에서 떨어져 왼쪽 고관절도 부러졌다. 두번의 수술 후 잠깐의 재활훈련을 하고 집으로 퇴원한 후 그녀는 침대에 누워지내는 신세가 되었다.

요즘의 그녀는 혼자 밥 숟가락도 못들고 혼자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뭔말인지 모르게 주절거리던 말도 전혀 못한다.

그녀가 하는건 그저 눈을 깜박이고 미음같은 죽을 받아먹고 컵에 주는 물을 받아 마시고 기저귀에 대소변을 본다.

그녀는 호스피스 케어를 받고 있다. 나는 일주일에 세번쯤 그녀를 방문해서 바이탈을 첵업하고 체온이 높으면 타이레놀을 멕이고 산소포화도가 낮으면 산소를 주고 혈압이 높으면 혈압약을 준다.

눈만 껌벅이며 미음을 받아먹는 그녀에게 나는 가끔 속으로 말한다...이제 그만 가도 괜찮지 않을까 ? 라고....

하루하루 누군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나는 두번이나 일을 그만두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 가족들의 부탁과 내가 그녀와 했던 약속--끝나는 날까지 함께 해준다는 약속 을 지키고 싶어 아직 그녀곁에 있다. 나는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 매일매일 내가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듯 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죽음이 내곁에 맴도는거 같아 우울하고 허무했다. 결국 나는 의사와 상담을 하고 우울증약을 처방 받았다.

한 삼일인가 약을 먹고 나는 정말 죽은듯이 잤다.

내 우울을 진정 시키는게 아니라 나를 그냥 아무생각 없이 잠재우려는 약 같았다. 나는 약을 중단했다.

의사는 mg 을 조절해서 다시 내게 처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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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

늘 지나던 거리의 올리브 색 대문을 칠한 집 정원에 올해도 어김없이 샛노란 꽃을 피워낸 나무를 봤다.

얼마나 확실한 노란색 이었던지 누군가 밤새 샛노란 물감으로 곱게 색칠을 한듯 했다. 며칠 그집 앞을 지날때 마다 그 노란색 꽃들이 황홀하게 보기 좋았다.

계절이 바뀌려면 어김없이 비가 온다.

쨍쨍했던 하늘이 순식간에 천둥과 번개를 품고 있는 듯이 회색으로 무겁게 내려 앉는다.

천둥이 몇번 치고 한 후 비가 쏟아진다 그리고 분분한 낙화 ....별이 떨어져 내린듯이 노랗게 떨어져 내린 꽃들...

그렇게 황홀하게 아름답던 꽃들도 떨어지고 나니 찢겨지고 흩어져 물에 씻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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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약 까지 먹으며 하루하루 힘들게 버티던 나는,

쏟아지는 빗속에 떨어진 꽃잎들을 보며 아이러니 하게 생각이 바뀌었다.

"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는게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내고 있는거야 "

왜 나는 강아지 블루나 제니퍼를 보며 그들이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

그들은 그들의 있는 힘껏 하루하루를 애쓰며 살아내고 있는건데....

살아가는 사람이 따로 없고,

죽어가는 사람이 따로 없다.

우리는 하루하루 삶과 죽음의 딱 경계선 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죽음에 조금 가깝게 걸어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삶에 조금 더 가깝게 걸어갈뿐이다.

나는 그저 죽음에 조금 가까운이의 손을 잡고 하루하루 잘 살아내게 도와주고 있는것 뿐이다라고 생각하니 아침마다 제니퍼를 보며 기쁘게 인사할수 있다. " 어제도 자알 살아내느라 애쓰셨스....오늘도 자알 살아보자 ..'

꽃이 지는거나,

사람이 지는거나...

환하게 한껏 피었다가 지는건 순식간 이다.허나 꽃도 사람도 살아 있을때 아름답다.

살아 숨쉴때 생명이 아직 남아 있을때는 아름답다. 삶은 그래서 비극이 아니라 희극인지도 모르겠다.

살아있는건, 살아 숨쉬는건 좋은 일이다. 살아 쉼쉬는거 고마운 일이다. 하루하루 살아가는건 그래서 참 숭고한 일이다.

우리집 강아지 블루는 요즘 나의 열과성을 다한 케어때문인지 제법 슬금슬금 걸어다니면서 밥도 꽤 잘 먹는다.

나는 블루가 저렇게 살아줘서 고맙다. 평온한 마지막까지 함께 할수 있기를 바란다.

제니퍼는 가끔 꽃이 핀 정원을 보며 웃는다.

회광반조가 그녀를 지나가는 듯 하다. 나는 그녀가 평화로운 마지막을 맞을때 까지 그녀와 함께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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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살아있어 아름다운 그대여.

부디,

행.복.하.라.

*회광반조 (回光返照) : 죽음을 앞두고 의식이 흐려져 가던 환자가 거짓말처럼 정신을 차릴때의 불교용어.

해가 지기 직전에 하늘이 잠깐 밝아진다는 뜻.

07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