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안에 수다.

이별 연습.

북아프리카 2023. 1. 15. 12:06

 

딸아이가 훈련을 떠났다.

텍사스 샌 안토니오 육군기지로 두 달간의 교육을 받기 위해 떠났다.

아침 비행시간에 늦지 않게 해가 뜨기도 전에 공항에 떨구어 주고 돌아오는 길, 겨우 두 달인데 마음이 싸~ 했다.... 이십여 년 전, 나도 엄마를 남겨두고 비행기를 탔었다. 처음 해보는 낯선 외국으로의 장시간 비행에 엄마가 공항까지 배웅했다. 나와 엄마는 쿨~하게 허그하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며 이별했다. 엄마를 뒤로하고 돌아서서 나는 남겨진 엄마를 생각하기 보다 앞으로 내게 다가올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일들에 잔뜩 부풀어, 흥분되고 긴장되고 설레며

비행기에 올랐다. 도착하고 들뜬 목소리로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을 때 엄마를 대신해서 받은 여동생이 내게 한 소리는,

"언니~ 엄마가 공항에서 언니 배웅하고 돌아서 집에 올 때까지 아무렇지도 않으셨는데,,,, 집에 와서 언니가 벗어놓고 간 옷가지들 붙잡고 대성통곡하셨다~~~~"

그 후로도 엄마의 흐느낌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내가 놓고 간 옷가지들을 정리하실 때, 화장실에서 내가 쓰던 칫솔을 볼 때,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을 끓일 때, 내가 베고 자던 베개가 이불장에서 툭~ 떨어질 때, 내가 쓰던 향수들, 내가 신던 신발들, 내가 읽던 책들을 바라볼 때 , 퇴근하는 시간 현관 밖에서 누군가의 구두 소리가 들릴 때, 명절에 명절 음식들을 준비하실 때, 나 떠나던 해 김장하실 때 내가 좋아하던 알타리 무를 버무리시면서도 엄마는 매운 고춧가루 탓을 하며 혼자 눈물 지셨다. 물론 나와 전화 통화에서는 전혀 내색 없으셨고 옆에서 지켜본 여동생의 말을 빌자면...

내가 어린 자식이었을 때는 나는 엄마와의 이별의 슬픔보다 내게 다가올 새로운 세상과 만나게 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들에 부풀어 나를 떠나보내는 엄마의 이별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헤아려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엄마는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의 품에 품어지지 않는 자식을 떠나보내며 한편으론 대견하면서도 많이 아쉽고 쓸쓸하고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듯이 허허롭다는 걸 그때는 별로 생각지 못했다.

이제 내가 엄마가 되어 더 이상 내 품에 품을 수 없는 내 아이들이 떠나가는 모습들을 보며 그때 엄마의 통곡이 생각난다.

 

내가 좋아하는 박완서 님 책 어디에선가 그분도 결혼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신랑이랑 인사 갔었을 때, 시큰둥하게 아무렇지 않게 맞아주시던 엄마가 너무 서운하게 느껴졌었는데 막상 시집으로 떠나온 후 엄마는 빨래 광주리를 들고 냇가에 가셔서 대성통곡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오늘,

딸아이를 공항에 떨구어 주고 오면서 그때의 "엄마의 통곡"을 생각했다.

두 달 후면 아이는 다시 내 품으로 돌아온다. 나는 아직 통곡할 때는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내 딸아이가 좀 더 멀리 나를 떠나야 하는 그날이 온다면 나는 통곡보다는 웃으면서 아이를 보내줬으면 좋겠다. 이제 내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더 깊숙이 세상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세상에 내 아이를 내어 놓으며 나는 내 아이가 만나게 될 사람들과, 여러 가지 상황들과, 부딪칠 세상에 기도한다. 부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길, 좋은 상황들과 좋은 세상들과 부딪치게 되길 ,,,

혹, 안 좋은 사람과 상황과 세상을 만나게 되더라도 내 딸로 인해 좋은 것들로 바뀌어 쥐게 되기를 기도한다.

집에 돌아와 아이 방을 청소했다. 아이가 입다 벗어 놓고 간 옷에서는 아직 아이의 체취가 남아있다. 아이의 머리칼이 엉켜있는 빗, 읽다 덮어놓고 간 책, 여기저기 던져놓은 종이들과 쓰레기들.... 빨랫감을 세탁기에 던져놓고 청소기를 돌리면서 아이가 돌아올 때쯤 어떻게 방을 꾸며서 놀라게 해 줄까 생각했다.

"How R U?" "I'm fine "

계집애..,,,, 조금 길게 문자하면 어디가 덧나는지... 원... 아이는 두 달간 훈련받고 교육받으면서 새로운 친구들과 새롭게 만나는 지식에 흥분되고 신나는 시간을 보내겠지.

살면서, 몇 번을 해도 익숙해지지 않고 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중에 하나... 이별.

남겨진 나는 이렇게 또 한 번의 이별을 연습했다.

.

.

.

그대는,

내게 오지 마시라....

그대와의 이별은 내게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