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안에 수다.

전지 ( 剪枝 )

북아프리카 2023. 1. 30. 06:49

 

 

 

 

 

출근하면서 언제나 지나치는 타운센터 블루바드의 가로수들...

인도에 접해 오른쪽에 심어져 있는 키가 크고 맨 위에 손바닥 벌린 것처럼 잎을 피고 있는 나무는 팜트리, 왼쪽 중앙분리대를 대신해  도로 중간에 심어져 있는 나무는 라일락과 같은 나무들인 거 같다. 

 

오른쪽에 있는 팜트리는 살도 찌지 않고 잎이라고 해야 맨위에 이름에 어울리게 손바닥을 활짝 펼친 모양의 잎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팜트리는 더운 날씨에도 아주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면서 안으로 안으로 단단한 결을 가지고 있어 몇 년 전 카테고리 4의 허리케인이 지나갈 때도 절대로 넘어지거나 부러진 걸 보지 못했다. 그만큼 특별한 보살핌 없이도 스스로 더운 날씨에 잘 적응하며 조금씩 조금씩 자라며 안으로 단단한 나무다. 

 

반면, 왼쪽에 있는 라일락과의 나무는 봄이면 푸르른 연녹의 잎새들을 마구 마구 만들어 내고 잎이 진 자리마다 하얀색 혹은 보라색 혹은 옅은 핑크빛의 꽃들을 피워내고  앙증맞게 작은 그 꽃들은 한차례 스콜이라는 억센 소나기가 지날 때마다 도로 위로 꽃잎들을 떨군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가지들은 마구마구 삐죽삐죽 위로 쭉쭉 뻗어 몇 달 동안 이발 하지 않은 시골 머슴의 머리처럼 어수선하다. 

 

겨울이 특별하게 춥지는 않지만 겨울로 들어설 무렵이면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웠던 가로수 꽃나무들이 전지(剪枝) 를 당한다. 

잎이 없고 별다른 보살핌없이 강한 팜트리는 간혹 몇 개의 가지를 잘라주는 걸로 대신할 수 있지만, 봄부터 늦여름까지 잎을 피우랴 꽃을 피우랴 바빴던 꽃나무는 여지없이 이발하듯 전지를 당한다. 전지는 나무가 더좋은 꽃을 피우기 위해 혹은 더 좋은 과실을 맺기 위해 필요 없는 가지를 치워주고 모양을 잡아줌으로써 나무의 생장에 도움을 주기 위해 하는 거란다. 날씨가 쌀쌀해 지면  봄부터 여름까지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웠던 꽃나무들의 전지를 본다. 그들의 전지를 보면서 드는 생각...

 

" 아...나도 전지 (剪枝 ) 당하고 싶다! 

 

이만큼 살아 오면서 어찌 나를 치고 지나간 시간들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다 나긋나긋 달콤하고 평화스러웠다고 말할 수 있으리... 때로는 나를 살짝 건드리기도 하고 , 때론 정신 못 차리게 나를 치고 박아 무릎 꿇게도 만들고 , 어느 때는 완전히 기진해 버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으리라는 절망감속에 버려두기도 했었던 시간들도 있었다. 그 시간들을 맞고 보내면서 나는 단단해지고 ,강해지고 , 안으로 안으로 깊숙이 나만의 깊은 결을 만들어 왔는지 모른다.

 

아무 가지나 잎도 거느리지 않은 , 안으로 안으로 너무 단단해져 버려 강한 허리케인 앞에서도 좀처럼 무너질 줄 모르는 야자나무처럼 그래서 이제는 앵간한 바람이나 , 빗줄기, 혹은 천둥 번개 속에서도 그저 아무렇지 않게 견딜 수 있을지 모른다. 누구의 보살핌이나 눈길, 손길, 마음길조차 별로 필요 없는 혼자서 족하고 평화로운 야자나무처럼... 하지만 나는 그런 단단하고 흔들림 없는 야자나무가 되고 싶진 않다 

 

나는,

내 안에 작은 가위 하나쯤은 가지고 살고 싶다. 작지만 날카로운 그 가위가 나안에 늘 솟아나는 잔가지 같은 걱정거리들 그리고  그것들이 지나가고 피워지는 작은꽃 몇송이들 그리고 일년에 한번쯤 쓸데없이 어수선한 것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잘라 버릴수 있게 내 스스로의 전지 (剪枝)를 하며 살고 싶다. 

 

나는 늘 이렇게 나를 볶아대고 , 그 볶아댐으로 늘 다른 사람에게 치대고 , 칭얼대고 , 엉기고 , 또 그들에게 나를 보살펴 달라고 떼쓰고 또 그들에 의해 가끔 나 자신을 전지 할 수 있는 그런 어수선한 시간들 속에서 살고 싶다.

나는, 강하고 단단하게 안으로 굳은 결을 만들어 넘어지지도 않고 꺾여지지도 않는 야자나무 같은 강인함을 갖고 싶지는 않다. 누구의 보살핌도 없이 혼자 단단하게 여물게 버티고 싶지도 않다 . 바람에 가끔 꺾여지고 빗물에 꽃송이를 떨구더라도 잎도 피고 꽃도 피우고 전지도 당하는 버라이어티 한시간들 속에 살고 싶다 . 그 시간들속에 가끔 전지도 당하면서 말이다 

 

더 좋은 잎과 더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한 정리, 잘라냄. 

나도 아직 내 안에  피우진 못한 꽃, 맺지 못한 열매를 위해 정리하고 잘라내고 하여 더 좋은 꽃과 열매를 위해 내가 나 자신에게  혹은 다른사람이 내게 해줄수 있는 사랑의 전지. 나는 전지 당하고 싶다 !   내안에 어수선히 자라던 쓸데없는 집착, 고집, 희망, 두려움, 기대, 혹은 안일함 까지도 가끔 전지 할 수 있다면.. 난  전지 된 그 자리에 다시 새로운 잎을 피우고 , 꽃을 피우고 그렇게 가끔 나를 새롭게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일 년 동안 라일락 나무는 너무 위로 치솟아 지금은 너무 어수선한 몸가짐을 하고 있다. 잎도 피웠고 꽃도 보았다. 이제 잎들은 노랗게 변색되어 바람에 날린다. 겨울을 맞기 위해 아마 곧 그 어수선한 가지들을 잘라버려야  것이다.

 

나도 내 안에 잘라 버려야 할 어수선한 가지들은 없는지.. 지금은 아쉽지만 오랫동안 길러왔던 긴 머리를  미장원에 가서 자르고 돌아왔을 때처럼 아쉽고 조금은 쓸쓸하겠지만 , 그래도 짧은 머리가 되었을 때의 그 홀가분함과 가벼움은 무시할 수 없다. 전지를 당한다는 건 적어도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거다. 내안에 무언가 잘려 지더라도 그렇게 내가 나를 보살핀다는거 혹은 누군가 나를 보살펴 준다는거다. 누군가 나를 사랑해준다는 거다 .

 

나이를 먹어 가면서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배어 나오는 삶의 지혜, 중후함 , 견고함 , 우아함 , 그런 것도 좋지만 , 나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고 새로운 일에 늘 우왕좌왕하고 , 천방지축 하고, 늘 우후죽순처럼 머리에 쓸데없는 생각과 걱정들을 담고 다닌다. 그래서 나는 전지가 필요하다. 나가 나에게 행하는 내 스스로의 전지던, 누군가 나를 대신해 정리해주고 잡아주고 다듬어주던 나는 가끔 전지를 당하고 싶다. 그렇게 잘리고 정리된 후 다시 푸릇하고 새로운 잎을 피우고 향기로운 꽃봉오리도 다시 피울 수 있도록 말이다.

 

때때로 ,

나는,

전지 ( 剪枝 )가 필요하다. 

 

나는, 

당신에게 전지( 剪枝 ) 당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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