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안에 수다.

11 월의 여자.

북아프리카 2023. 1. 31. 10:49

 

1. 1964 년 11 월.

 

 

1963 년 11월.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달라스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정확히 일 년 후 그가 떠난 날 나는 태어났다.

지금도 내 생일이 다가오면 티브에서 그에 관한 다큐나 그에 관한 스토리가 방영되곤 한다.

 

양력으로 생일을 하는 나는 가끔 음력의 소설과 생일이 겹치기도 한다. 대학 일 학년 때이던가는 생일에 엄청난 첫눈이 내리기도 했다. 내가 태어난 날이 작은 눈이 온다는 소설과 겹치면 나는 괜스레 기쁘곤 했다.

지금 사는 곳에서는 간혹 내 생일과 추수감사절이 겹치기도 한다. 그런 해에는 온 세상 사람들이 내 생일을 축하하고 나를 축하해 주러 퍼레이드를 펼치고 노는 거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역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나라와 인연이 있었던 건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2. 2007 년 11 월.

 

2007 년 11월에 나는 혼자가 되었다. 법적으로 매였던 부부의 연이 끊어졌다. 10월경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서명을 하고 왔다. 한 달 정도의 숙려 기간을 주더니 한 달 후 연락이 왔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변호사 사무실에 갔다. 사무실을 저만치 앞두고 마지막 시그널에 멈춰 섰을 때 빨간 정지 신호등 불빛을 응시하며 나는 울었다. 소리 내서 펑펑 울었다. 악을 악을 썼던 거 같기도 하다.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사무실에 들어서자 은퇴를 앞둔 나이 든 백인 변호사가 물 한 잔을 권했다. 나는 물을 단숨에 마시고 그가 내미는 대로, 하라는 대로 서명했다. 14 년의 결혼 생활이 그렇게 끝났다.

 

그해 내 생일은 추수감사절이었다.

아이들은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가고 나는 컴컴한 아파트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하루를 보냈다. 카프카 소설 속의 그레고르 잠자처럼 어느 날 아침에 내가 커다란 벌레로 변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동안을 보냈다.

 

 

3. 2019 년 11 월.

 

 

나는 올해 11 월 꽉 찬 5X세가 된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얄짤없는 5x세가 된다. 나이를 먹는 게 즐거운 어린 날은 아니지만, 나이를 먹는 게 그리 나쁘지도 않다. 지나온 시간들을 다시 보내야 하는 예전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면, 그냥 지금 이대로 나이를 먹은 내가 좋다. 어떤 이는 내 나이를 여자라 칭하지도 못하는 여자라고 하더라만,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출근 준비하느라 양치하고 세수하고 찍어 바르고 나면, 아직은 그런대로 봐줄 만한 중년의 아줌마가 거울 속에 있다.

언제부터 였는지 주름도 제법 자리를 잡았고, 햇살 받으며 운전하느라 오른쪽보다 왼쪽에 잡티도 많이 생겼고, 저녁마다 티브를 보면서 마사지를 했어도 팔자 주름도 아침이면 인사를 한다. 밥을 많이 먹는 거 같지도 않은데 뱃살은 빠지질 않고, 금방 들은 얘기나 뉴스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기억에서 사라진다. 일하면서 종종 다리를 뒤로 힘껏 들어 올려 뻗는 스트레칭을 하며 궁둥이 쳐지는 걸 막아보고자 하지만, 청바지를 입을 때는 괜찮은데 면바지를 입으면 확실히 처진 엉덩이로 심란하다.

그래도, 그래도, 아직은 나는 내가 봐 줄만 하다고 생각하며 산다.

 

그. 리. 고

아직도 나는, 나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각박한 세상에 구부려 지지 않고, 휘어지지 않는 숫자 "1" 같은 친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1"과 그의 "1" 이 만나 비로소 완성되는 11 월의 여자가 되고 싶다.

나는 올해 11 월 꽉 찬 5X세가 된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얄짤없는 5X세가 된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지금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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