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게온 글.

방하착 ...... 이용헌.

북아프리카 2023. 1. 13. 11:11

 

방하착放下着*

 

백병원 영안실 앞마당, 잿 비둘기 한 마리가 언 땅을 찍고 있다

채송화 줄기처럼 연붉은 발가락을 바짓단 밖으로 내놓고

불광동 옥탑방에 세 들어 살던 비둘기가

탑골공원에 나가는 일은 일과 아닌 일과였다

3호선을 따라 무악재를 넘어 종로 3가에 이르는 길은

그가 기억해야 하는 유일한 항로였다

기껏해야 빵 부스러기로 끼니를 때우는 노후지만

척신隻身의 그에게도 날개는 있었다

장기판을 거들거나 사물 폐를 따르다가도 그는 훌쩍

하늘로 오를 수 있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높이 날 수 없다는 것, 그에게는

적빈赤貧이 곧 자유였다

방하착放下着을 아시나요?

날개가 점점 무거워져요

더 이상 내려놓을 것도 없는 나이에 그는 그녀를 만났다

창공의 편대에서 떨어져 나온 은빛 비행기처럼 희디흰

그녀의 처소는 달비듬만 내려앉는 공원 벤치라 했다

한때는 축포 소리에 맞춰 수없이 하늘로 솟아올랐다는 그녀는

어느 날부터 날갯짓을 하지 못했다

누구 하나 속 깃을 씻겨주는 이도 없었다

그녀가 하는 일이라곤 싸구려 밥집을 기웃거리거나

근처 낙원떡집 앞을 서성이거나 가끔은 넋 나간 기억으로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것이었다

출근길 신호 대기 중 횡단보도 너머로 본 그것,

희뿌연 아스팔트 위에 채송화 꽃물 붉었던 그 자리,

오늘 그녀는 이승의 마지막으로 방하착을 알고 갔을까

모가지가 댕강댕강 잘려나간 가로수들이 조문 행렬로 서 있는

마른 내길 영안실 앞마당,

잿 비둘기 한 마리 등솔기를 들썩이며 곡哭을 하고 있다.

이용헌.

*방하착(放下着):일체의 집착이나 생각을 내려놓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

.

.

.

시를 별로 많이 읽는 편이 못된다.

 

"방하착" 이 시를 읽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시를 읽으면서 눈에 눈물이 고였던 순간이 없었다.

 

아버지 생각이 났었다.

적빈이 자유 라면,

평생 자유스럽게 사셨을 거 같은데...

돌아가실 때까지 내 눈에 비쳤던 아버지 모습은,

날개를 가지고도 날수 없었던.... 딱.... 잿 비둘기 그 모습 이셨다.

 

아버지도 그의 방하착을 알고 가셨을까?

일체의 집착이나 생각으로부터 놓여나 진정 자유로와 지셨을까?

.

.

내게도 언젠가,

방하착이 온다면......

모가지 댕강댕강 잘린 가로수일망정 조문 행렬로 맞을 수 있을까?

 

죽음으로 방하착을 맞고 싶지는 않다.

살아가면서 , 숨 쉬면서 , 순간순간 집착과 생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래서,

늘,

마음으로 순간순간 방하착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