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Dear Somebody.

Dear Somebody ...... 도쿠가와 이에야스.

북아프리카 2023. 2. 7. 04:48

 

지나간 멜들을 뒤적이다.

언젠가 여름쯤 네가 보낸 멜을 다시 읽어보았다.

 

혹,

기억이 나는지?

너는 그때 "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읽고 있다고 했다. 5 권까지 진도가 나갔다는 이야기가 쓰여 있더군.

그때 그 책 다 읽었어?

 

아주 오래전

난, "대망"이라는 책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났었다. 너무나 많은 등장인물과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전개되어서 읽다가 다시 뒤로 후퇴를 했다가 다시 일보 전진했다가 그렇게 책과 밀당을 하다가 전 12 권 중에서 겨우 5 권까지 끝내고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 책을 끝낸 한 친구는 내게 그러더군 " 살인적인 인내력" 이 아니면 끝내기 어려웠다고...

 

그때 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보다 " 오다 노부나가"라는 그의 주군에게 더 마음이 갔었던 기억도 난다.

"오다 노부나가 " 그 남자가 책 속에서 그렇게 멋지게 다가오더라. 영웅이 만들어지는 건 남과 다른 뛰어난 그의 성품이나, 지략이나, 혹은 시간이 맞아야 하는 것도 있지만 그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많이 좌우되는 거 같다. 오다 노부나가가 있었으니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국 통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다시 불러보는 S.

요즘 나는 내가 참 궁금하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또는 나는 어떤 여자인지? 어떤 친구인지? 어떤 엄마인지? 어떤 딸이며 누이며 언니인지? 어떤 동료이며? 어떤 이웃인지? 지금까지 내가 나라고 알고 있었던 내가 정말의 나인지? 나는, 네 친구인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오랫동안 나를 봐왔던 네게 묻고 싶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말이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아 ~ " 서 내가 누구 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 , 내가 하고 싶은 것 , 내가 바라는 것, 내가 갖고 싶은 것, 혹은 먹고 싶은것, 가고 싶은 곳 , 닿고 싶은 곳....

그런 거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알 수 있다면 나를 알아볼 수 있을 거 같은데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나 스스로에 대한 질문이라 명확한 대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가끔, 나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걸 잘하고 이런 걸 좋아하고 이런 걸 싫어하고 이런 걸 원하고... 명확하게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보면 경이롭고 신기하고 부럽기도 하다. 나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어쩌면 나 자신이 아니라 나를 봐왔던 혹은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안에 있는 나도 잘 모르는 나를 바라보는 다른 이의 시선들 말이다.

 

어제는 친구랑 농담을 하고 장난을 치다가 그 친구가 내게 그러더군 " 넌 생각이 너무 많아... 네 머릿속 생각을 좀 줄여...."

내가 그에게 손가락을 쫘악~펴 보이면서 말했다. "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 내 머릿속 생각은 지금 내가 손가락을 쫘~악~ 핀 것처럼 이렇게 많아..자 ,, 그럼 생각을 없애 버리자 " 엄지손가락을 접고, 검지를 접고, 중지를 접고, 그렇게 하나씩 손가락을 접어들어갔지... 그러면 모가 남는지 알아? 주먹을 쥔 손이 남게 되지. 그 주먹으로 친구의 콧잔등을 때릴 뻔했다.

 

생각이 많은 건 손가락을 펴고 있는 상태와 같아. 무방비 상태. 뭔가를 잡을 수도 없고 어딘가를 가리킬 수도 없고 물론 어딘가 누군가를 강하게 공격할 수도 없다. 그야말로 맨손 ... 내가 원하는 공격자의 모습을 가질 수가 없다. 하지만 내 안에 생각을 손가락을 접듯이 그렇게 하나씩 접어 버리면 주먹을 만들 수 있고 그렇게 접힌 생각들을 모으면 나는 강한 주먹을 갖게 되고 그 주먹으로 씩씩하게 공격을 하거나 전진을 할 수 있을 듯한데 말이다. 그런데 생각을 접는 게 쉽지가 않더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하통일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전투를 치루어야 했을까?

 

오늘처럼 이렇게 더운 여름날에도 전투를 치러야 했을 거야 물론..

각각의 다른 모든 집단을 굴복시키고 전국 통일을 이루고자 했던 그의 전투는 당연히 내가 내 안에 생각의 손가락을 접는 일보다 몇 배나 더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가 그렇게 무수한 전투를 치러내고 천하통일을 이루는데 아마도 깊고 긴 생각이 그리 많이 필요하진 않았을 거다. 너무 많은 생각과 깊은 생각은 오히려 앞으로 전진하고 공격하는데 장애가 되는 경우가 많았을 테니. 공격하고 전진하는 데는 빠른 결단력과 추진력이 깊은 사고보다 더 많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게 절대적으로 부족한 거... 결단력과 추진력...

내가 절대적으로 버려야 하는 거... 쓸데없는 깊은 사고(思考)...

 

도쿠가와 아예야스 , 그는 그렇게 많은 전투를 오랜 시간 동안 치러서 결국 천하통일을 이루었는데, 나는 내 생각의 손가락 하나 접는 일도 힘에 겨워 내 안에 나를 일관성 있게 정렬을 못하고 있으니..

그래도 나를 사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S.

긴 장마가 끝을 보이고 있으니 이제 본격적인 불볕더위가 시작되겠구나. 강원도 양양 ,, 네 집 앞,,,

마당에 평상을 늘어놓고 커다란 양푼에 방금 뜯어온 채소를 듬뿍 찢어 넣고 고추장 넣고 들기름 넣고 찬밥을 쓱쓱 비벼서 된장국에 먹고 나무 그늘 늘어진 그 평상에 하늘 보고 누워서 우리 어린 시절 이야기나 실컷 했으면 좋겠다. 상대원 고개, 구 종점, 66번 종점에서 시작되는 남한산성 입구, 은행나무가 있어서 은행동 이었었나? 아 가로수가 은행나무였던 기억이? 학교 때 늘 보던 통근버스를 기다리던 맘 설레게 했던 공군 아저씨 , 그때 500원이면 샀던 문고판 작은 세계문학전집 한 권 , 엄청 매운 쌀떡볶이를 팔던 젊은 과부 언니 그리고 구르는 말똥을 본 적 없지만 서로 보기만 해도 좋아서 깔깔댔던 우리들 이야기 말이다.

 

오늘 하루 종일 비는 내리고, 생각은 나를 멀리도 데리고 가서 논다. 치열한 일본의 전국시대의 전쟁터와 우리 어린 시절 아지랑이 같던 간지러운 기억과 지금 내게 와있는 생각해야 할 것들이 제각기 하나씩 손가락이 되어 자기들 멋대로 춤을 춘다.... 그래서 아직 내 손은 주먹을 쥐지 못했다.

하지만,

곧, 이 생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접으면서 나는 곧 주먹을 쥐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주먹 쥐고 뛰어보자 팔짝! 하지 않을까?

천하통일은 못 이루더라도, 적어도 내 안에 무수한 나를 일관성 있게 정리한 나만의 생각의 통일을 이루어야 하지 않겠니?

오래전,

네 멜을 보다가 하루 종일 너를 생각했다.

너도 이 멜을 보면서 하루 종일 나를 생각하겠지...

그래, 꼭 하루 종일 내 생각을 해주라. 그리고 내가 네게 물어본 질문에 답을 해주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이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은 너무 진부해서 못하겠고 ,,

그냥, 잘 지내라.

 

 

PS : 그런데 모든 손가락을 다 접고 가운뎃손가락만을 세우면......?

그건 영어로 아주 못된 욕이 되는 거....... 알지?

가끔 나는 아무 생각도 전혀 접혀지지 않을 때 나 스스로에게 가운뎃손가락만을 세우게 되기도 해......

 

 

 

053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