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Dear Somebody.

Dear somebody ...... 선인장 이야기.

북아프리카 2022. 12. 16. 09:26

 

 

 

먹을 수 있는 채소 키우기는 물컵에 양파 하나 넣어 놓는 거밖에 못하시는 울 엄마, 아버지 말을 빌자면 "먹지도 못하는" 꽃 화분 키우는 건 참 좋아하셨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시 많은 선인장을 유독 좋아하셨더랬죠.

저 어릴 적부터 올망졸망 선인장을 많이 키우셨습니다. 주위 이웃들이 나누어 달라고 하면 잘라서 나누기도 하고 귀하거나 갖고 있지 않은 선인장은 구하여 애지중지 애정을 주며 키워내시곤 했습니다. 엄마는 사시사철 순하고 여린 가지에서 오색의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일반 화초들보다 투박하고 날카로운 가시를 달고 있는 선인장을 유난히 참 좋아하셨습니다.

어린 시절 가시가 너무 무서운 제가 "왜 엄마는 선인장이 좋아?"라고 물었더니 " 잎인지 줄기인지 알 수도 없이 가시만 삐죽이게 못생긴 게 꽃을 피우는 게 신기하지 않니? " 라시 더라고요. 이쁜 꽃 한 송이 하나 품고 있을 거 같지 않은, 사나운 가시만 품고 있을 거 같은 선인장이 꽃을 피우는 걸 보셨습니까? 어릴 적 동생이랑 저랑 아웅다웅 쌈박질하다가 잘못 건드려서 손이나 팔 또는 다리에 선인장 가시에 찔리는 일도 참 허다했었습니다. 그때도 엄마는 저희들 가시에 찔린 걸 돌봐주시듯 선인장이 어디 다치지 않았나 살피시곤 했지요. 엄마의 선인장 사랑은 참 유별났었습니다.

그중에 용설란이라는 선인장이 있었습니다.

용의 혓바닥같이 넓적하고 두꺼운 잎새에 삐죽삐죽 가시들이 돋아나 있지요. 아주 험하게 생긴 선인장입니다. 다른 선인장은 몇 년이 지나면 종종 꽃을 봬주기도 했는데 용설란이 꽃 핀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엄마도 못 보셨다고 했었죠. 조금 더 커서 알아보니 용설란이라는 선인장은 100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답니다. 그리고 꽃을 피우고 죽는답니다. 그러니까 한 번의 꽃을 피우기 위해 100년 동안 가시로 무장하고 꽃씨를 보듬고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100 년 동안 말이지요.

그 후로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먼 땅으로 이민 와 사는 곳에서 용설란이 꽃을 피운 걸 본 적이 있습니다.

크기가 그리 크지도 않은 그 선인장 중심에서 기다랗게 막대처럼 꽃대 롱이 뻗더니 하얀 꽃이 그냥저냥 볼품없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100년 만에 피는 꽃 치곤 별로 이쁘거나 화려하거나 대단하지 않아서 조금 실망했었습니다. 며칠 후 다시 그 꽃을 만났을 때 오래전 들었던 그 말이 사실인 듯 꽃을 피운 용설란은 용이 혓바닥이라고 할 것도 없이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궁금하고 강해 보였던 선인장의 가장 화려한 때와 가장 최후의 모습은 그렇게 별 감흥 없이 지나쳤습니다.

또 다른 선인장 꽃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임신한 엄마가 손대지 않고 입술로 선인장 꽃을 따서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어느 해 우리 집 공작선인장이 아주 이쁜 분홍색 꽃을 대롱대롱 피웠는데 동네 새댁 아줌마가 와서 다른 아줌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배실 배실 웃으며 정말 손을 뒤로 깍지를 끼고 입술로 꽃을 다 먹었습니다. 엄니랑 동네 아줌마들 틈에 끼어 깔깔대며 재미있어하는 틈에 끼어 어린 저도 같이 구경을 했더랬는데 그 아줌마가 정말로 아들을 낳았는지는 기억이 없습니다.

지금은 저도 엄마가 공작선인장이라 칭하셨던 그 화분을 가지고 있는데 해마다 요맘때만 되면 이쁜 분홍색 꽃을 끝마디마다 피웁니다. 대롱대롱 이쁘게 매달린 꽃을 보면서 아~~ 내가 조금만 젊었어도 입술로 꽃 한번 따먹어 보겠구먼.... 하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습니다.

날이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김장도 하기 전에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해야 했던 월동 준비는 그 많은 선인장 화분을 집안으로 들여놓는 일이었습니다. 아침부터 엄마는 물을 떠다가 걸레로 화분들을 하나씩 깨끗하게 씻으시고 안 좋은 이파리를 떼어내시고 물을 주시거나 흙을 더 덮으시고 그렇게 하나하나 이쁘게 단장을 하셨습니다. 점심때쯤이 되면 제게 점심을 든든하게 먹이시고 그 화분들을 하나씩 집안으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작은 애들은 반짝반짝 들어서 그냥 옮기면 되는데 문제는 가시도 엄청 크고 길면서 무게도 엄청 나가는.... 아까 말한 용설란 같은 애들을 옮기는 일이었습니다. 그건 정말 몸을 많이 사리는 일이었습니다.

엄마랑 둘이 같이 들어줘야 하고 그 커다란 가시에 자칫 눈이나 찔리면 그야말로 대형사고가 나는 일이니 두 사람이 아주 손발이 잘 맞아줘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엄마랑 저는 대부분 손발이 잘 맞았는데 어쩌다 힘쓰다 우스운 일이 한번 생기면 깔깔~ 대고 웃느라 힘이 다 빠져서 하다가 주저앉아 눈물 섞인 웃음을 한 바가지씩 흘리곤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화분 월동 준비를 끝내고 나면 집안 거실이 화분으로 가득 찼습니다. 선인장도 아니면서 혼자 끼어있는 붉은 동백 분까지 낑낑대고 옮겨놓으면 그때부터 거실은 사람을 위한 거실이 아닌 화분들을 위한 온실 화가 되어 걔네들 과의 한겨울 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엄마 집에 다시 갔을 때는 연세 드신 엄니를 위해 번쩍번쩍 화분을 옮겨줄 손길도 없고 엄마 연세도 더 이상 걔네들을 돌보기 버거우시고 하나둘 엄마 손을 떠나고 거실 한쪽에 자그마한 국화분 몇 개만 꽃을 피우고 있더군요. 그렇게 해마다 나를 고생 시키던 그 육중한 용설란은 어느 해인가 아무리 소생시키려 해도 소생하지 못한 채... 꽃 한번 피우지 못하고 죽었다 하시더군요.

이제 팔십을 살짝 넘기신 내 엄마.

울 엄마 모습이 용설란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쭈그러진 손마디, 이마 주름살, 하얗게 눈이 내린 거 같은 머리칼.... 그 모습, 그 안에서 세 개의 꽃을 피우셨습니다. 오랫동안 인내하고 추운 겨울을 넘기고 뜨거운 태양을 참고 비바람, 가뭄, 홍수..... 그 모든 인생의 계절을 넘기고 비로소 피워내는 선인장 꽃......

언젠가 활짝 꽃으로 피워날 꽃씨를 자신 안에 소중히 품고 참고 인내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디면서 꽃이 활짝 봉오리를 터트리면 자신은 힘없이 서서히 말라 주저앉아도 억울해하지 않을 그런 선인장 용설란... 나는 우리 엄마한테 어떤 꽃으로 피워져 있는지.... 엄마가 평생을 인내하고 견디면서 피울만한 그럴만한 가치 있는 꽃으로 엄마에게 피워져 있는지....

지금 저도 제 안에 무수한 가시를 가지고 견디고 버티는 용설란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요즘 제 안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꽃들을 봅니다. 앞으로 피어나는 제 꽃들에게 세상이 제게 어떤 비를 내리고 어떤 바람과 천둥과 또 어떤 따뜻한 햇살을 내릴지 알 수 없지만.... 저는 믿습니다. 제 꽃들도 기필코 아름다운 자태로 아름다운 향기로 피어날 거라고....

Dear S

처음으로 몇 개의 화분들과 겨울을 나야 하는 그대의 걱정을 이해합니다.

그대의 화분들은 올겨울 그대가 가까이에서 주는 관심 만으로도 넉넉하고 포근한 한 철을 견디어 낼 수 있을 겁니다. 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길을 주는 것도 아주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침마다 눈길을 주시면서 " 잘 잤니? " 하고 말 걸어 주세요.

아마 걔네들 좋아서 겨울 한 철 내내 파릇파릇한 초록빛을 그대에서 뿜어 줄 겁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어느 관계는 향기롭고 이쁜 꽃이 피워지기도 하고, 어떤 관계는 물 한 번 주지 않은 화분이 시들 거리다 말라죽듯이 사그라지는 관계도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에서 꽃을 피우는 것도 저는 "관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작은 말과 따뜻한 눈길 부드러운 손길.... 그런 것만으로도 충분히 꽃 피울 수 있는 거라고요.

오늘 아침,

창가에 놓인 저의 공작선인장이 또 한 송이의 분홍 꽃봉오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작은 꽃봉오리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들이 사랑스럽습니다. 무거운 듯이 꽃봉오리를 매달고 있는 공작선인장에게 말을 걸어 봅니다......." 너... 아주 이쁘다 ... 네가 피우는 꽃들이 너무 이뻐... 애쓴다.... 힘내..."

며칠 지나면 이 녀석은 그 봉우리를 터트려 또 이쁜 꽃 한 송이를 피워내겠지요.

손을 뒤로 깍지를 끼고 슬며시 입술을 가져다 대고 따 먹어 볼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동정녀 마리아처럼,

아들을 낳을 수 있을까요?

언제나,

그대의 따뜻한 말과 관심으로 제 안에도 분홍 분홍 한 꽃봉오리들이 맺히는 거.....

보이십니까?

초록 초록한 겨울 되십시오.

추신 : 몇 년 전 멕시코 친구를 따라 그녀의 고향 " 아과스칼리엔테스 "를 갔었습니다.

멕시코에서 만들어지는 유명한 술 "테킬라"의 원료여서 인지 용설란 농장이 여기저기 크게 있었습니다 손등에 레몬즙을 문지르고 소금을 살살 뿌린 후, 테킬라 한 모금을 마신 후 그 레몬과 소금이 묻은 손등을 혀로 햟아 먹는 게 테킬라 마시는 법이랍니다.

백 년 만에 꽃 한번 피우고 주저앉아 죽는 줄 알았던 용설란이 때때로 사람을 위로해 주는 술의 원료가 된다는 게 새삼 기특하지 않습니까?

제게도 언젠가 그대를 위로 할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