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Dear Somebody.

Dear Somebody ...... 새로 산 담요.

북아프리카 2023. 2. 10. 04:50

 

 

한 삼일 조금 쌀쌀하더니 오늘은 맑은 햇살이 하루 종일 좋았던 늦가을 하루였습니다.

요즘 저는 제법 평화롭게 지내고 있습니다. S 님은 언제나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믿어 버리는 건 제 마음이 편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으니 ... 흠 ... 언제 난 저는 이기적이군요.

어제는 외출해서 작은 담요 같은 이불을 하나 사 왔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벌써 하나씩 사서 침대에 올려주었는데 제 자신을 위해서는 미루어 왔던 거였어요. 왜냐하면 ... 너무 부드러워서 부드러워서 제 침대에 올려놓기가 좀 겁이 났거든요. 웃으시겠지만 너무 좋은 거 너무 부드러운 거 너무 달콤한 거 너무 친절한 거 너무 홀딱 빠지겠는 거에는 저는 아직도 겁이 납니다.

늘 내게 왔던 것들은, 혹은 내가 만났던 것들은 조금은 거칠고 쓰고 뜨악하고 감당하기 조금 힘든 것들이라 느끼고 살았는지 너무 좋고 부드러운 그 담요의 감촉이 내가 감당하기에 조금 생경하게 느껴졌더랬어요. 모.... 그래도 .. 암튼 어제는 그 부드러운 담요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세탁기에 돌려 말려 침대 위에 펼쳐놓고 그 속으로 포~옥 들어갔지요. 아.... 난 이제 부드럽게 살 거야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던 거 같기도 합니다.

요즘은 일주일마다 스케줄이 다르게 일하고 있어요.

오랫동안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일을 하다가 요즘은 일주일마다 다른 요일과 시간에 맞추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스케줄이 저는 아주 좋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정해진 시간에 일할 때는 가끔 정해진 틀에 내가 꽉 맞추어진 것 같이 때론 아주 답답하고 뛰쳐나오고 싶은 그런 느낌들이 아주 힘들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 두 번의 쉬는 날도 괜히 조급하고 뭘 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 낮잠이나 펴 자며 보내곤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시간 다른 요일에 일을 하게 되니 일하는 거 같지도 않고 쉬면서 널널하게 일하는 기분도 들고 숨을 쉬는 거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 나는 정해진 틀에 맞추어 살기보담 조금 자유스러운 스탈로 사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걸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재봉틀질을 했어요. 집에서 안 쓰는 천이 있길래 아들 방 창문에 커튼을 만들었습니다. 대충 짐작하셨겠지만 그냥 사각으로 들들들 박기만 하면 되니 그리 어렵진 않았습니다. 제 실력이 거기까지 밖에는 안되는지라...그리고 베개커버도 네 개나 만들었습니다. 하얀 바탕에 작은 노란 꽃들이 무늬를 이루는 천을 잘라 역시 삼면을 들들들 박아 만들었습니다. 아주아주 맘에 들었습니다. 어쩌면 베개 덕분에 잠을 잘 잘 것도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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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해서 그래서 좋은 S 님.

전 이제부터 열심히 널널하게 살고 싶습니다.

이 나이대의 사람들이 흔히들 이야기하는 이 나이에 이루어 놓아야 하는 경제적인 튼튼한 기반을 이루어 놓지 못했다고 해서 조급하게 허둥지둥 거리며 하루하루 하는 볼 시간도 없이 그렇게 쫓기듯이 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아 봤는데 그렇게 살면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늘 나는 숨이 가빴고 신경질적이었으며 마음도 몸도 여유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관대하지 못했고 늘 삶은 내게 불공평하다는 불만으로 가득 찼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먹고살아야지.... 목구멍이 포도청이잖아 ... 하는 절박함에 나는 찡그리고 앞으로 나아가곤 했지요.

그런데 S 님.

그렇게 살지 않아도 나는 먹어지고 그렇게 살지 않아도 내 목구멍은 채워지더란 말씀이죠...

한가한 낮에 야채가게에 가서 장을 봐서 김치 비스름한 것도 만들어 놓고, 노오란 녹두를 사다 녹두전을 부치며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꿀과 레몬을 사서 레몬 차를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오늘처럼 재봉틀질로 하고 강아지 블루를 데리고 산책을 하기도 합니다. 뒤죽박죽 섞여있는 주얼리 박스를 정리하며 색이 바랜 은팔찌 목걸이를 치약을 묻혀 닦았습니다. 반짝이는 실버톤이 아주 흐뭇했습니다. 책꽂이 책들을 전부 빼내어 먼지를 털고 키 순서대로 다시 정렬해서 넣어 놓기도 하고 간신히 물만 먹고 유지하던 창가의 화분들에게 손길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스케줄에 따라 일하러 나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살아지는 거였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나는 행복할 수 있는 거였습니다.

너무 많은 생각에 너무 많은 걱정에 미리 오지도 않은 시간들을 생각하며 조급해하고 쫓기듯이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거였습니다. 남은 내 시간들에 꼭 누군가를 만나 나를 의탁하고 함께 하지 않아도, 나 혼자 널널하게 살아도 될 거 같습니다. 혼자라는 것에 불안해하고 조바심 내면서 더 늦기 전에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그 허둥대는 마음을 이제는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다.

언제나 내게 좋은 귀를 내주는 S 님.

어쩌면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은 이미 내가 다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거, 내가 좋아하는 건 이미 내가 다 가지고 있는데 나는 그걸 다른 곳에서 찾으려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고 바라는 건 내가 알고 있고 그걸 줄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인데 나는 그걸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에게 찾으려 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나를 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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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재봉틀질을 끝내고 한바탕 먼지를 청소한 후, 요즘 새로 읽기 시작한 산도르 마라이의 " 열정 " 을 읽었습니다. 새로 만든 배겟닛으로 싼 베개를 베고 새로 산 부드러운 담요를 덮었지요. 산도르 마라이는 헝가리 작가인데 사십여 년을 조국을 떠나 망명생활을 하다 구십의 나이에 뉴욕에서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죽고 난 후 몇십 년이 지나 비로소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방문했을 때 동생방 책꽂이에서 열권 정도의 책들을 훔쳐 왔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월요일만 되면 직원들에게 책을 선물하던 사장님 덕분에 여동생방은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며칠을 그 방에서 놀다가 가져온 책 중에 산도르 마라이의 " 열정 " 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아끼는 사탕을 녹여 먹듯이 아주아주 천천히 아끼며 보고 있습니다.

책표지에 누군가 써 놓았듯이 번역된 문장이지만 문장이 참 아름답습니다.

어릴 적엔 책을 손에 쥐면 밤이 새도록 상관하지 않고 한숨에 다 읽어 버려야 속이 시원해지곤 했는데, 이제는 아무리 좋아하는 것도 참으면서 아끼며 천천히 음미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S 님을 아끼면서 천천히 조금씩 살펴보듯이 말입니다

아끼는 S 님.

조금 차가운 저녁 공기가 기분 좋은 가을 저녁입니다.

그곳은 어떤지요?

당신의 하루가 반짝반짝 빛나길 바랍니다.

그 반짝임이 나로 인함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잠들기 전에 전 아끼는 " 열정" 을 조금 보다가 잠들겠습니다.

물론 너무 부드러워 너무 좋은 새로 산 담요와 노란 꽃들이 총총히 박혀있는 베개를 베고..

네,

잠도 잘 자겠습니다.

당신의,

하루도 자~~~알.

0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