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안에 수다.

그녀,"제니퍼 김" 이야기 ...... 수구초심.

북아프리카 2023. 5. 25. 08:04
 
Homecoming
아티스트
George Winston
앨범
Country(조지윈스턴 外, An Original Soundtrack Album)
발매일
1970.01.01

 

 

아주 오래전 고구려 유적에 관한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지금은 중국 땅이 되어버린 드넓은 만주 벌판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살던, 옛 고구려 혹은 발해 사람들의 유적들이 지금도 중국 땅에 많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중에 내 시선과 생각을 사로잡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 그 넓은 땅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들의 무덤에 관한 이야기였다. 발굴된 그들의 무덤 속에 놓인 관이나 남겨진 유골의 위치들을 지도에 놓고 선을 그으면 신기하게  그것들이 향하는 방향이 대부분 한 곳으로 정해져 있다는 거였다. 아주 조금의 위치를 틀어서라도 그들의 무덤의 관이나 유골의 머리가 향한 곳은 모두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줄어서라도 가고 싶은, 영혼이라도 다시 돌아가고픈, 그들이 떠나온 한반도 그들의 나라 고구려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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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제니퍼 김.

1945 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성장했으며 명문 E여고를 졸업하고 역시 명문인 사학 Y대 간호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2 년정도 서울 소재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다 그녀 나이 22세 , 미국으로 취업 이민했다.  그녀가 처음 도착 한 곳은 뉴욕이었다.

그녀 나이 서른 즈음 역시나 명문 S  대를 졸업하고 보스턴에서 유학 중이던 그녀보다 일곱 살 많은 나이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두 아들을 낳았고 아이오와 소재 대학에 교수가 된 남편을 따라 아이오와에서 십여 년 살다가 다시 플로리다 대학으로 이직한 남편을 따라 플로리다로 이주했다.

 

그녀는 젊은 시절엔 병원에 간호사로 근무했으나 나이가 조금 들어서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고등학교 상주 간호사로 근무했다. 

62세 정년까지 그녀는 아이들을 만나는 학교 간호사로 일하는 걸 좋아했다. 2007 년 그녀는 은퇴했지만 은퇴하고도 다시 아이오와 대학에서 강의하던 남편과는 떨어져 살았다. 그 무렵 두 아들들은 성장해서 집을 떠나 살았고 그녀는 방이 다섯 개나 되는 집에서 혼자 지냈다. 그리고 몇 년 후 심장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심장에 pacemaker를 넣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2010 년경 그녀의 건망증이 심해져 그녀를 혼자 둘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의 큰아들이 그녀의 집으로 돌아왔다. 차를 몰고 외출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그녀의 심한 건망증을 알게 된 그녀의 아들은 그녀로부터 차키를 뺏었다. 2015년 그녀는 치매 진단을 받았다.  

 

내게 메일을 보낸 건 변호사로 일하는 그녀의 둘째 아들이었다.

몇년 전에 사이트에 올려놓은 내 프로파일을 보고 보낸 메일이었다. 나는 사이트조차 잊고 있었는데...

엄마의 치매로 인해 엄마와 소통을 할 수가 없다. 엄마는 중기 치매 환자다. 형이 엄마를 케어하고 있지만 , 엄마가 한국말만을 하는지라 한국말을 모르는 자식들과 전혀 소통을 할 수 없다. 일주일에 몇 번, 몇 시간이라도 엄마의 말동무가 되어줄 수 없겠냐... 하는 내용이었다. 

 

전에 잠깐 일을 쉴 때 초기 치매 환자인 친구의 시어머니를 일주일에 몇 번, 몇 시간 방문하면서 말동무가 되어준 적은 있었지만 , 미국에서 오래 산 한국 엄마가 한국말만 해서 의사소통이 안된다니? 나는 궁금하기도 하고 또 같은 한국인이라는 동질감과 왠지 모를 안타까움에 당분간 오후 출근을 하니 , 오전에 두 시간 정도의 시간을 낼 수 있다고 그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렇게 나는 73세의 중기 치매환자 한국계 미국인 제니퍼 김을 만났다. 

 

그녀를 방문한 첫날 ,

오전 열한 시 삼십 분, 아침을 일찍 시작한 그녀와 그녀의 큰아들이 식탁에서 이른 점심을 먹다 나를 맞았다. 

숨듯이 아들 뒤에 서있던 그녀가 나를 보더니 물었다  " 한국사람? "  내가 " 네 , 한국 사람이에요 안녕하세요? "라고 말하니 그녀가 하얀 얼굴에 꽃을 피우듯 활짝 웃었다. 그리곤 내 손을 잡고 식탁으로 끌고 가 같이 앉았다. 은색의 단발머리, 흰 피부, 아주 맑게 반짝이는 눈동자, 오뚝한 코, 그리고 훤칠한 키... 겉으로 봐서는 아주 우아하고 멋진 할머니로 보였다. 많이 마르긴 했지만 그녀의 걸음걸이나 움직임 또한  전혀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언어 수준은  정말 믿기 힘들 정도였다.

그녀는 말을 많이 하긴 했지만 문장을 완전히 만들지 못했고 그냥 여러 가지 단어 또는 감탄사들이 마구 섞이여 그녀 입 밖으로 버려지는 듯했다. 

 

" 이건 너무 오래됐지.. 이런.. 세상에 그런데... 울 아빠가.. 나는... 아이고... 참나... 이게 다 죽은 거지? 모야... 어쩌면 좋아.. 이거 맛있어... 아... 콩콩... 쭈쭈... 미시려 브... 울레레... 비베..@^!&*^&$^%$%&..."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나 스물두 살까지 살았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해 지금 그녀 나이 73세까지 살고 있다. 50 년이 넘는 세월을 미국에서 영어를 말하고, 쓰고, 읽고 대부분 많은 시간들을 미국 문화와 음식, 미국사람들과 섞여 살았다. 아들 둘에게도 철저하게 미국 교육을 시키느라 아이들에게 한국말을 가르치지 않았다. 아들들은 간단한 정도의 한국말만 듣고 이해한다. 치매진단을 받은 후 그녀는 빠른 속도로 영어를 잊어갔다. 오십여 년 동안 그녀가 듣고 말하고 썼던 영어를 빠르게 잊어 가면서 그녀가 지금 기억하는 언어는 한국어다. 

 

한국에서 그녀가 보낸 시간은 겨우 이십이 년 , 미국에서 그녀가 보낸 시간은 오십일 년. 지금 그녀의 기억은 오십여 년을 보낸 미국에서의 시간보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라고 가족과 함께 보냈던 ,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했던 , 한국에서의 시간으로 돌아가 있다.

2015 년에 치매 진단을 받고 삼 년여 동안 그녀의 증상은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 지금 그녀는 오십여 년을 사용한 영어를 거의 잊었다. 자신의 이름조차 쓰지 못한다. 물론 한글도 읽고 쓰고 할 줄 모른다 , 그러나 하루의 대부분을 그녀는  한국말로 계속 중얼거린다. 그녀와 함께 지내는 그녀의 아들은 그녀 화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 그저 대충 눈치로 그녀가 원하는 것을 맞추어 준다.   

 

오래전 한국 국적을 상실하고 미국 국적의 미국인이 된 그녀.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한국어는 모국어, 제1 언어다.  오십여 년을 사용한 영어는 제2 언어다. 언어만 모국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라 그녀의 입맛과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 그녀가 좋아하는 악기소리,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 그녀가 좋아하는 사진이나 그림의 풍경들... 많은 것들이 오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래전 그녀가 살았던 모국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수구초심 (首丘初心)

 

그런 그녀를 보고 나는 오래전 내가 보았던 고구려에 관한 다큐가 떠올랐다. 

아 , 그녀가 수구초심을 했구나. 몸은 비록 여기 있지만  오십여 년의 이국에서의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도  그녀의 기억은 오래전 그녀가 떠난 조국을 향해 수구초심을 했구나. 그녀의 기억은 오래전 떠나온 그곳으로 이미 돌아가 있구나. 

 

출근 전의 약 두 시간의 만남이라 오래 그녀와 함께 할 수는 없었다.

나는 두서없이 중얼대는 그녀의 한국말에 장단과 추임새를 넣어주면서 그녀와 함께 했다.

오랜만에 봇물이 터지듯 근 두 시간을 떠들던 그녀가 현관까지 쫓아 나오며 나를 배웅했다.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차갑고 마른 손이 오래도록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녀 동네에서 차를 돌려 나오는 길, 

첨 보는 도로 이름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확 트레일 (Mohawk Trail ) , 치파와 트레일( Chipperwa Trail ), 모히칸 트레일( Mohican Trail ) , 제로니모 트레일 (Geronimo Trail ).......

 

오래전 이 땅에 살던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거나 용감했던 인디언 추장의 이름을 붙인 도로들... 

 

지금,

그들은 어디쯤에 있을까?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들은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하며 살고 있을까?

오래전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았던 그들은 죽어서 어디를 향해 머리를 뉘었을까? 

 

제니퍼의 기억은 어디쯤까지 돌아가 있을까? 

그녀의 기억은 날마다 떠나온 조국 어디쯤을 헤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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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파치 트레일 (Apache Trail )에서 좌회전했다. 

차 방향 센서가 East를 가리켰다.

 

나는 천천히 동쪽으로 차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늦은 가을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