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내안에 수다.

"니나"와 노닐기 2.

북아프리카 2023. 6. 3. 23:00
 
로망
“겁나지 않아?” 75세 조남봉과 71세 이매자는 치매 부부입니다. 결혼 45년차, 몸도 마음도 닮아진 부부는 이제 세상에 단 둘만 있는 것처럼 삽니다. 매일 기억이 흐릿해지지만, 먹고 사느라 잊었던 로망은 점점 더 선명해집니다. “올 것이 왔다 싶으니까 아무렇지도 않아요” 2019년 4월, 잊혀진 ‘로망’이 봄바람처럼 옵니다.

 

평점
8.6 (2019.04.03 개봉)
감독
이창근
출연
이순재, 정영숙, 조한철, 배해선, 이예원, 진선규, 박보경, 이규형, 여무영, 김기천, 조아인, 안지혜

 

아침 여덟 시에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살그머니 키를 넣어 문을 열었다. 

역시나 아침에 니나가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빨간색 후디와 긴바지도 챙겨 입었다. 머리도 잘 빗었고 입술에 빨간색 립스틱도 발랐다.  아침에... 모지?  불안함은?

 

나....." 좋은 아침이야 니나! 잘 잤어?"

 

니나...." 응... 좋은 아침! 그런데 어서 빨리 짐을 챙겨야겠어. 난 여기 머무른 지 벌써 이틀째야. 쟈넷이 나만 남겨두고 가버렸어. 

               빨리 이 호텔 체크아웃을 해야 해 12 시까지.. 그렇지 않으면 난 또 하루치 방세를 내야 하거든 빨리 내 옷을 슈트케이스에 넣어줘 "

 

나......" 니나.. 여기 니나 집이야. 니나는 지금 잠자고 일어났어. 오늘은 토요일 나랑 노는 날 이잖어 "

 

니나...." 아니야. 나는 내 집으로 돌아가야 해! 어서 호텔 카운터에 내려가서 오늘까지 방세가 얼마인지 알아갖고 와줘 "

 

나......... 아.. 지난주엔 근 4 시간을 잠을 자서 나를 너무 한가롭게 해 주더니 오늘은 이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의 시작이란 말인가? 

 

왔다 갔다 몇 번의 실랑이를 벌였다.

그녀의 관심과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아침도 먹이고 날씨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아침에 온 신문 헤드라인에 트럼프와 콤리에 대한 공방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옆집 딘 존슨이 이른 아침부터 잔디를 깎아서 시끄럽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그러나 집요하게 다시 시작되는 니나..

 

니나......" 이 집은 내 집이 아니야. 나는 어서 집에 가야 해. 가서 할 일이 많아. 너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모르지? 빌도 내야 하고 사람들에게 일도 시                                     켜야 하고   은행도 가야 하고 사람도 만나야 하고..."

 

나........." 알지.. 알아. 니나는 바쁜 사람이야. 그런데 오늘은 토요일이라 은행도 문을 닫았고. 사람들도 오늘은 출근을 안 해. 그러니 니나,  오늘 하루  더  이 호텔                    에서 쉬는 게 어떨까? "

 

니나......." 안돼! 나는 이 호텔에서 나갈 거야. 어서 내 옷을 내 차에 실어줘. 신발도 , 가방도 , 화장품도..."

 

니나는 윌체어로 차고로 이동해  차고문을 열더니 그녀의 캐딜락 문을 열었다. 나는 니나가 챙겨준 그녀의 옷들을 그녀의 차로 옮겨 실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뜻대로 옷을 대충 실었는데 그녀가 이번에는 신발까지 다 옮겨 실으려 했다. 나는 니나에게 크리스틴에게 전화해보는 게 어떨까 하고 이야기했다. 나는 니나 캐딜락 차키가 없으니 니나차를 운전할 수 없다고....

 

니나가 크리스틴에게 전화했다. 크리스틴은 단호하게 니나에게 말했다.

그 집은 니나집이고  , 니나는 그 집을 떠날 수 없고 , 니나는 호텔에 있는 게 아니고 , 크리스틴은 지금 니나에게 올 수 없다고 , 그러니 나와 같이 있으라고.

 

전화를 끊고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니나..

아침부터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잔디를 깎고 있는 그녀의 이웃  " 딘 존슨 " 에게 가잔다. 이 집이 진짜 니나집이 맞는지 그에게 물어보겠다는 거.

휴... 나는 그것 까지는 거절할 수가 없어서 내차에 니나를 태우고 " 딘 존슨" 네 집으로 갔다. " 딘 존슨"은 종합병원 신경외과 의사다. 그의 부인은 간호사. 오랜 전 니나와 같은 병원에서 근무도 했었던 오랜 친구이자 이웃이다.

 

땀범벅이 된 " 딘 존슨" 이 반갑게 인사했다.

 

딘.........." 안녕 니나! 오랜만이에요.  지냈어요?  좋아 보이네요 "

 

니나......." 안녕 딘!  지냈어요?. 얘는 내 새로운 친구야 인사해, 그리고 나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는데 , 저 옆에 저 집이 내 집이야? "

 

딘이 나를 쳐다봤다. 나와 딘의 눈빛이 마주쳤다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딘.......... " 그럼요 니나. 저 집은 니나집이에요. 우린 이십 년 동안 이웃으로 살고 있죠. 당신 새로운 친구를 만나서 반가워요 "

 

니나........" 아.. 그래요 딘? 당신이 그렇게 말해주니 저 집이 내 집이 맞는군요. 난 내가 크루즈 여행에 와있는 줄 알았지... ㅎㅎ."

 

잠깐의 따뜻한 담소가 끝나고 딘의 집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니나가 웃었다.

믿을 수 없다고 어떻게 내가 그런 생각을 했는지 그리곤 한동안 딘과 그의 부인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는 맞장구를 치며 들었다. 그리고 다시 니나는 설핏 잠에 빠졌다. 

 

니나가 잠든 사이, 

첫날 보면서 흥미로웠던 니나의 살림살이 들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진열해 놓은 은식기 들은 색이 바래 누렇게 되어 있고 ,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모은 은수저도 역시 색이 바랬다.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이가 빠졌거나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고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들에는 먼지들이 내려앉았다. 야외 수영장 보기좋게 앉아있던 가구들엔  낙엽이 우수수 내려앉아 이끼가 파랗게 자리를 차지했다. 

 

아... 이 집엔 물건들도 알츠하이머 속에 있구나.

 

니나가 깨어났다.

딘 존슨과의 대화를 기억하면서도 , 이번엔 이 집 말고 다른 집으로 가야겠단다. 나는 집이 세채라고 이 집에 더 이상 머무르고 싶지 않다고. 

그러면서 내 마음을 할퀴는 니나의 한마디...

 

니나..........." 이 집에 있고 싶지 않아 ! 이집에 있으면 아무도 나를 찾아내지 못할 거야! 크리스틴도 내 아들 윌리엄도 내 친구들도 엄마도 내가 여기 있는걸                                    몰라!   이 집에서 나가야 해!  사람들이 나를 찾아낼 수 있도록... 내가 여기 있는걸 아무도 모르니까 아무도 나를 찾아오지 않는단 말야! "

 

니나가 내게 소리쳤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그 말이 내 맘에 너무 아프게 박혔다. 순간 조금 목이 메인것도 같다.

 

그래,

결국, 니나는 외로운 거다. 니나는 사람이 그리운 거다. 니나는 혼자가 싫은 거다. 니나는 누군가와 함께 하고 싶은 거다.

니나가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자기를 잊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집에서 나가고 싶은 거다. 

 

결국,

크리스틴과의 통화로 어쩌면 지난주에 오지 못한 남자친구 마빈이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니나는 다시 잠잠해졌다. 

나는 , 니나가 그를 위해 머리 손질을 하고 화장을 하는 걸 도와주고 따뜻한 허그를 하고 퇴근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 나는 정말 심각하게 마음을 정했다.

아.... 더 늦기 전에 사람 남자를 만나야겠다. 돈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

그저 나이 먹어가면서 같이 밥 먹고 , 이야기하고 , 장보고 , 티브보고, 수다 떨고 , 가끔 다투고 , 다시 화해하고... 그저 같은 시간 속에 같은 공간 속에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겠다. 

 

외로움이 고독이 그녀의 정상적인 기억을 앗아가 버린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짓 거...

모.. 혼자 살면 어때? 자유롭게 혼자삶을 즐기며 사는 것도 괜찮지. 이렇게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혼자의 자유가 그리 오래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왜 생각 못했는지 ... 혼자라는게 , 외로운거라는게 , 사람에게 치명적인 병을 키울수도 있다는걸 왜 생각 못했는지...

 

물론 ,

치매가 외로움에 기인한다고 볼 수는 없다. 가족력 일수도 있고 , 지병에 기인할 수도 있고 , 사고나 엄청난 충격으로 기인할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니나를 보면서 니나의 치매는 어쩌면 남편이 죽은 후 그 큰집에 혼자 지내야만 했던 니나의 고독에 기인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니나는 이제는 그 집을 탈출해서 사람들이 그녀를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나가고 싶은 거다. 

 

오늘,

첨으로 " 까짓꺼....모...혼자 살 수도 있지 자유롭게 편하게  "라고 생각했던 내 

생각 위에 커다란 망치가 떨어지며 그 생각을 산산조각을 냈다. 

이 건방진 초로의 늙은 아줌마야! 정신 차려! 하고.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갑자기 조바심치며 마음에 한가득 치밀어 오르는 말...

 

아..

 늦기 전에....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