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착放下着* 백병원 영안실 앞마당, 잿 비둘기 한 마리가 언 땅을 찍고 있다 채송화 줄기처럼 연붉은 발가락을 바짓단 밖으로 내놓고 불광동 옥탑방에 세 들어 살던 비둘기가 탑골공원에 나가는 일은 일과 아닌 일과였다 3호선을 따라 무악재를 넘어 종로 3가에 이르는 길은 그가 기억해야 하는 유일한 항로였다 기껏해야 빵 부스러기로 끼니를 때우는 노후지만 척신隻身의 그에게도 날개는 있었다 장기판을 거들거나 사물 폐를 따르다가도 그는 훌쩍 하늘로 오를 수 있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높이 날 수 없다는 것, 그에게는 적빈赤貧이 곧 자유였다 방하착放下着을 아시나요? 날개가 점점 무거워져요 더 이상 내려놓을 것도 없는 나이에 그는 그녀를 만났다 창공의 편대에서 떨어져 나온 은빛 비행기처럼 희디흰 그녀의 처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