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53

나에게 주는 시 ...... 류 근.

나에게 주는 시 ​ 우산을 접어버린 듯 잊기로 한다 밤새 내린 비가 마을의 모든 나무들을 깨우고 간 뒤 과수밭 찔레울 언덕을 넘어오는 우편배달부 자전거 바퀴에 부서져 내리던 햇살처럼 비로소 환하게 잊기로 한다. ​ 사랑이라 불러 아름다웠던 날들도 있었다. 봄날을 어루만지며 피는 작은 꽃나무처럼 그런 날들은 내게도 오래가지 않았다. 사랑한 깊이만큼 사랑의 날들이 오래 머물러주지는 않는 거다. ​ 다만 사랑 아닌 것으로 사랑을 견디고자 했던 날들이 아프고 그런 상처들로 모든 추억이 무거워진다. 그러므로 이제 잊기로 한다.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일어서는 사람처럼 눈을 뜨고 먼 길을 바라보는 가을 새처럼 ​ 한꺼번에 한꺼번에 잊기로 한다. ​ 류근. . . . 너에게 주는 시. ​ 마음에 도장을 새기듯 기억하기..

오늘, 살아있어 아름다운 그대에게.

우리 강아지 블루는 9 월 23 일 이면 16살이 된다. 이혼 전 태어난지 한달이 되서 내딸 진이의 생일선물로 우리가족이 되었다. 아이들 어릴적 부터 우리집 막내로 온갖 사고를 다 치면서도 마냥 이쁘기만 했던 블루... 작년 치과 치료를 받다 입가에 상처가 난 후 상처 봉합하는 수술을 세번이나 했다. 그러면서 항생제와 진통제를 오랫동안 먹어야 했다. 얼마전에 결국 음식을 거부하고 드러누웠다. 병원에 데려가니 췌장이 안좋다고 나이도 있으니 안락사를 시키던 입원을 시키란다. 병원에 3 일 입원하고 데려온 후 블루는 우리집 상전이 되었다. 한달 동안 약과 영양제를 주사기로 먹이고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입맛 없는 녀석에게 별별 음식을 해다 바치면서 혹여 이놈이 후딱 우리곁을 떠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

방하착 ...... 이용헌.

방하착放下着* ​ 백병원 영안실 앞마당, 잿 비둘기 한 마리가 언 땅을 찍고 있다 채송화 줄기처럼 연붉은 발가락을 바짓단 밖으로 내놓고 ​ 불광동 옥탑방에 세 들어 살던 비둘기가 탑골공원에 나가는 일은 일과 아닌 일과였다 3호선을 따라 무악재를 넘어 종로 3가에 이르는 길은 그가 기억해야 하는 유일한 항로였다 기껏해야 빵 부스러기로 끼니를 때우는 노후지만 척신隻身의 그에게도 날개는 있었다 장기판을 거들거나 사물 폐를 따르다가도 그는 훌쩍 하늘로 오를 수 있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높이 날 수 없다는 것, 그에게는 적빈赤貧이 곧 자유였다 ​ 방하착放下着을 아시나요? 날개가 점점 무거워져요 더 이상 내려놓을 것도 없는 나이에 그는 그녀를 만났다 창공의 편대에서 떨어져 나온 은빛 비행기처럼 희디흰 그녀의 처소..

허수경....산문집 중에서 " 가소로운 욕심 "

"기숙사에 살 때 내 방에서 내려다보이는 풀밭으로 토끼들이 자주 나타나곤 했다. 어느 날 저녁, 시간이 없어서 저녁밥은 못 하고 당근 오이나 잘라서 먹자, 하고 당근 껍질을 벗기다가 녀석들을 보았다 나는 당근을 던져주었다. 오물오물 단방에 먹어치웠다. 그 후로 자주 나타나서 내가 당근을 던져주면 오물오물 먹었다.이제는 당근이 집에 없는 날에도 나타나서는 내 방 앞 잔디밭을 어슬렁거렸다. 따로 당근을 사들고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나를 기다리지 않는 기숙사로, 비록 당근 때문이지만 찾아오는 녀석들이 참 예뻐서 나도 모르게 욕심을 내고 말았으니....... 녀석들 중 두 마리의 목에다 리본을 달아준 거다. 한 녀석에게는 푸른색을, 한 녀석에게는 붉은색을, 여름 내내 우리는 참 친해졌다. 용하게도 녀석..

노카페인 커피에 관한 짧은생각.

대표사진 삭제 © Myriams-Fotos, 출처 Pixabay 매해 건강검진을 위해 의사를 만났다. 이것저것 문진을 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몇 가지 검사를 오더 했다. 검사를 받기 위해 예약을 하고 일찍 일어나 돌아다니며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 즈음 다시 의사 면담이 있었다. 다른 검사 수치는 정상 범위에 있는데 약을 먹고 있는 혈압은 그리 좋은 수치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의사 : 혹시 너 커피 마시니? 나 : 당근이지... 그래도 하루에 두 잔 정도 밖에는 안 마시는데? 의사 : 어머 얘~~ 너 커피 끊어.. 커피에 카페인이 혈관을 수축시켜서 혈압에 그리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아 나 : 아니... 수십 년을 마셔온 커피를 어떻게 끊으란 말씀? 의사 : 그래그래.. 나도 알아..

마음을 열어주는 한 가지 이야기.

Chicken Soup for the Soul : Think Positive저자마크 빅터 한센,잭 캔필드출판Chicken Soup for the Soul발매2010.09.28.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이 쓴 "마음을 열어주는 101 가지 이야기 ( Chicken soup for Soul) "라는 책이 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들을 짤막하게 모아놓은 책인데 2 편까지 갖고 있었는데 두 권 다 누군가에게 빌려줬는데 되돌려 받지 못했다. 그 책 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내 요금을 내면서 내 뒤에 오는 차 다섯 대, 혹은 몇 대의 차의 요금을 내가 대신 내어주는 거.. 그러면 멋모르고 내 뒤에 오는 차들이 요금을 내려다가 " 당신 앞에 사람이 ..

드라마 "봄 밤" 유감.

이정인과 권기석은 4 년째 사귀어온 제법 오래된 연인이다. 전날 친구 집에서 음주가 과했던 정인은 늦잠 잔 아침에 숙취제를 사러 들어간 약국의 약사 유지호와 처음 만난다. 그 후 기석의 농구시합에 따라간 날 다시 유지호와 만난다. 정인은 기석과 4 년을 만났지만 정인을 보지도 않고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기석 집안과 때때로 기분에 따라 이별을 입에 올리는 기석에게 실망감을 가지고 있다. 지호는 대학시절 풋사랑으로 아들을 둔 미혼 부다. 다시 누군가를 만난다는 생각에 회의적이다. ​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끌려가며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요즘 " 봄밤 "이라는 드라마다. 정인이라는 여자 주인공과 지호라는 남자 주인공 주위로 여러 가지 모양의 인연들이 다른 색깔로 보인다. 정인과 4 년을 만났지만..

위 로.

© americanheritagechocolate, 출처 Unsplash ​ 우울할 땐, 초콜릿을 먹는다. 가끔 기분이 꿀꿀한 내가, 나를 위로하는 가장 쉬우면서 가장 달콤한 방법. ​ 살아가면서 누구나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아플 때, 슬플 때, 화날 때, 고통 속에서 신음 소리조차 안 나올 때... 짐짓 약해 보일까 봐 고통의 소리조차 과장된 웃음으로 포장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내 안에서 절실하게 위로가 필요함을 나는 안다. 내게 위로가 필요할 때, 그런 나를 위로할 수 있는 거?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혹은 글, 그림, 사진 또는 풍경, 맛있는 음식, 야간 드라이브, 쇼핑, 술, 또는 담배, 강아지, 고양이, 나보다 더 슬픈 영화, 그리고 초콜릿.... 사람마다 다..

바바리맨의 기억.

내가 다니던 여고에도 바바리맨이 있었다. 학교 정문은 주택가와 떨어져 있고 다른 학교들과 담장을 같이 하고 있어서 학생이 아니고서는 굳이 와야 할 필요가 없는지라 그쪽은 출몰하지 않았는데, 학교 후문은 주택가에 바로 접해 있었고 꼬불꼬불 여러 개의 골목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골목들 끝에는 작은 재래시장이 있었다. 그는 그 골목길을 근거지로 출몰하는 바바리맨이었다. ​ 나는 두발은 자유화됐었고, 교복을 입고 졸업한 마지막 세대다. 고2 때 나는 짧은 커트머리에 흰 블라우스와 검은 주름치마를 입었다. 그리고 고 2 때부터 아마도 대학 준비를 위한 야간자율학습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빙 ~ 둘러서 버스 정류장을 가야 하는 정문보다 시장통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쉽게 가기 위해 삼삼오오 ..

비와 허기짐에 관하여 ......

​ © sseeker, 출처 Unsplash ​ ​ "사라 맥라클란"의 "에인절"을 듣는다. 6 월부터 허리케인 시즌이긴 하지만 8 월에 들어서면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내리는 비는, 미처 방어하기도 전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처럼 참 대책이 없다. 어젯밤에도 창을 두드리던 비는 오늘 아침 이른 외출을 하려는 데도 내렸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아니라, 흡사 나를 비의 감옥에 가두어 두기라도 할 듯 철창만큼이나 굵은 빗줄기들... 빈속에 헤이즐넛 커피에 크림만 넣은 커피를 연거푸 두 잔을 먹고 들어오는 길.... 아........ 허기지다. 아........ 허기지다 ... ​ 비는 생명을 잉태하기도 하고 생명을 키우게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는 사람 속을 허허롭게도 만든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정말..